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의 탈당 이후에도 한나라당 대선 예비주자들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도토리 키 재기를 거듭해 온 범여권 예비주자들은 물론이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포함한 대기주자들까지도 아직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좀처럼 변화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이런 정치 지형은 비(非) 한나라당 예비주자들을 초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나라당 예비주자들에게도 이완과 착시를 부르는 모양이다. 최근 한나라당 예비주자들이 온 힘을 쏟고 있는 줄 세우기는 '예선이 결선'이라는 착각의 결과이자 '대세는 굳어졌다'는 대세론의 변주다.
● 지지 속의 기대와 주문 읽어야
굳이 과거 두 차례의 대선 패배 경험에 빗대어 대세론의 허망함을 일깨우려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유전하는 세상에서 오늘의 대세론이 어제의 대세론과 같을 수 없다.
또한 현재 한나라당에 쏠린 유권자들의 지지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따라서 거품이 많이 빠지더라도 전처럼 곧바로 대선 패배로 이어지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대세론 실패의 교훈을 잘못 새긴 것이다. 대세론의 패배는 '대세인 줄 알았던 지지가 뚜껑을 열고 보니 다르더라'는 식의 판세 착각 때문이 아니다. 대세라는 착각을 빚을 만큼 무성했던 관심을 통해 그들이 한나라당에 의탁하고자 했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기대에 어긋나는 행태로 그들의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이 실패의 본질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실패의 경험에서 값진 교훈을 얻었다면 높은 지지율에서 전에 없이 높아진 유권자의 기대와 주문을 읽으려고 애써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달리 보려고 애써도 한나라당에서 빚어지는 상황은 그런 노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의원들과 지구당 위원장들을 줄 세우는 것도 모자라 당내 영향력이 있을 듯한 원로들까지 줄을 세우고, 심지어 2002년 대선 당시의 불법행위로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빚은 주역들까지 경선대열에 내세웠다.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 합류한 서청원 전 대표는 "큰 빚을 갚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국민의 눈에는 정치적 영향력 회복을 모색하는 서 전 대표와 당내 경선에서의 집표력을 고려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이해타산'의 합치로 비칠 뿐이다.
또한 천막당사에서 지내고, 연수원까지 국가에 헌납하면서까지 희석하려고 애썼던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새삼스럽게 일깨울 뿐이다. 신경식 전 사무총장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실용적 개혁뿐만 아니라 도덕성까지도 강하게 요구할 전망이다. 이런 마당에 도덕성 문제를 환기시키는 원로들까지 끌어들이는 행태는 스스로 묘혈을 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앞의 경선이 아무리 중요해도 늘 결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또 다시 분한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른다.
● 국민은 보수에 도덕성 요구해
확실히 시대는 바뀌었다. 유권자들의 의식성향도 변해서 대체로 '중도 보수' 쪽에 몰려 있다. 중도의 좌표가 좌파와 우파의 수치적 평균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중평균이나 최대값으로 결정돼야 하는 것이라면, 한나라당 내부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왼쪽을 차지한 곳이 전체 한국 사회의 중도 좌표와 겹칠 수 있다.
'좌파적'이라는 현 정권의 무능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나라당 두 예비후보에 쏠린 압도적 지지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국민의 의식이 오른쪽으로 많이 이동했다.
한나라당을 여전히 '수구보수세력'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집안 내력을 감안하더라도 구성원과 사회환경의 변화를 무시한 그런 단정은 과거 '빨갱이'와 다를 바 없는 이념 공세다.
그러나 도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언제든 수구세력으로 전락할 것이고, 진보세력의 무능에 데었다고 하지만 수구세력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낼 정도로 유권자들의 의식 변화가 크지는 않다. 그래도 대세론이 있다고? '누구 마음대로?'도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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