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당으로서의 존재와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공당으로서 엄연한 기간 조직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당은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조직으로 양분된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선거를 앞두고 당이 유력 후보를 지원하고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은 그런 정상적 현상과는 거리가 있다.
현역이나 원외를 불문하고 소위 '줄서기'가 빚는 파행은 끊임 없이 당의 원심력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 간에 이와 관련한 노골적인 언쟁이 벌어진 것은 줄서기의 심각성이 얼마나 깊이 일상화해 있는가를 알려준 단면이었다.
뿐만 아니라 경선 규칙을 둘러싼 양 진영 간 다툼이 수 개월째 치졸한 '땅 따먹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후보 검증 논란도 국민의 짜증과 외면을 사는 집안싸움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한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이를 "시시콜콜한 싸움"이라고 싸잡아 비난했을까.
단적으로 말해 한나라당은 나태하고 오만하다. 대선을 치르는 야당으로서의 긴장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대통령과 구 여권의 대선 전열이 중심을 잃고 분열 상태를 면치 못하는 데서 막연하게 선거 승리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정권을 상실한 지 10년이라고 해서 지금쯤은 정권 교체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는 안일한 오산이다.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를 위해 경선 운동을 벌이는 각각의 사조직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리도 무성하다. 이를 부르는 별칭으로 '사설 위원장'이라는 새 용어까지 생겼다고 하니 지금 한나라당이 돌아가는 속 사정이 어떤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부결된 어이없는 사태도 당 같지 않게 흘러가는 당의 치부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ㆍ박 두 주자가 유력하다고 하나 이들에게서 새 정권에 기대되는 시대의 비전을 듣기도 어렵다. 정권 교체를 주장하면서 미래를 말하지 못하는 정당은 과거 회귀와 반사이익의 수혜나 추구하는 퇴행 세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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