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5월 4일 오후 3시.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동대문에서 흥화문(구 서울고 자리)으로 내달리면서 국내 대중교통사에 새로운 획이 그어졌다. 인천-노량진간 경인철도가 개통되기 4개월 전의 일이다. 전차는 시운전과 점검을 끝낸 5월 20일 드디어 일반시민에게 공개됐다.
전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운행 구간도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연장되고, 그 해 12월 21일에는 용산선도 개통됐다. 전차운행이 밤 10시까지 연장 운행되면서 정거장과 매표소 주변의 조명시설이 필요했다. 서울시내 전차 전등 전화사업을 맡은 한성전기회사는 90년 4월 10일 승객이 많은 종로매표소에 3개의 가로등을 점등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민간의 최초 전기 점등으로, 이를 기억하기 위해 66년부터 이 날을 ‘전기의 날’로 정했다. 우리 삶에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 전기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20년이 흘렀다.
●경제발전 원동력
우리나라 근대 대중 교통사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전차는 국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 전력사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해외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한 64년, 역사적인 무제한 송전이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 전력사업은 위기를 맞았다. 당시 전국 발전설비의 약 90%가 북한에 있었고, 남한에 있는 발전소 용량은 19만9,000㎾에 불과했다.
게다가 6ㆍ25전쟁 등을 거치면서 가정에서 전깃불을 켜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생산 공장의 기계를 돌리기에도 모자랐다. 61년 6월 설립된 한국전력주식회사는 전력설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1962년부터 제1차 전원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긴급 전력대책으로 추진된 발전함 도입 등 4만9,000㎾의 설비를 조기 준공했다. 또한 장기 전력 대책 일환으로 삼척화력2호기(3만㎾), 부산화력1호기(6만6,000㎾) 준공 등으로 무제한 송전을 실시, 해방 후 되풀이 해오던 전력난이 비로소 해소됐다.
●세계 6위 원전 국가
78년 4월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시설인 고리 원자력 1호기 준공으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원자력 발전시대를 열었다. 87년 말 국내 원자력발전 설비용량은 571만㎾. 전체 발전설비의 30%, 총 발전량의 53%를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초창기 국내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외국기업이 주도했으나 84년에는 정부의 원전기술 자립계획에 따라 한국표준형 원전 개발에 착수했다.
98년 한국표준형 원전 1호인 100만㎾급의 가압경수로형 원자로인 울진3호기를 완공했다. 이어 99년에 울진 4호기가 완공된 후 영광 5ㆍ6호기, 울진 5ㆍ6호기도 한국표준형으로 건설돼 원전기술 자립을 이루어냈다. 현재 20기의 원전을 운영, 세계 6위의 원전국가로 성장했다.
●전력 수출 시대 열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력사업은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1995년 2월 한전은 필리핀 말라야 화력발전소 성능복구 사업을 수주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96년에는 필리핀 일리한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사업을 따냈다. 선진국의 유력 전력회사들을 물리치고 7억 달러 이상이 투자되는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을 획득한 것이다. 해외사업은 순항을 거듭해 2003년 일리한 복합화력발전소가 미국 파워지에서 선정하는 우수발전소로 주목을 받았고, 최근 3년 동안 평균 7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필리핀뿐만 아니라 중국(무척)에 100MW급 발전소 준공 등으로 동북아시아 전력 허브 구축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깐수성 위먼과 네이멍구 싸이한파의 풍력발전소를 준공하였으며, 레바논 전체 전력공급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발전소를 인수ㆍ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송ㆍ변전기술을 이용한 미얀마, 리비아, 캄보디아 등의 전력 계통 관련 사업 및 우크라이나 배전분야 기술용역사업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등 다각적인 해외사업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2005년에는 전기로 남과 북을 하나로 연결했다. 통일부로부터 개성공단 1단계 사업의 전기사업자로 지정 받아 2005년 3월부터 한전이 생산한 전기를 북한 개성공단에 공급하고 있다. 48년 5월 전력 교류가 단절된 이래 57년 만에 분단의 벽을 넘는 역사적 쾌거를 이루며 남북교류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김 혁기자 hyukk@hk.co.kr
■ 기고/ 소중한 자원 '내 것처럼' 아껴쓰고 설비 건설에는 '내 일처럼' 관용을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같은 잠자리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똑같은 말이나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마찬가지 아닐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전기가 마치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그 존재가치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혜택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전기 공급에 꼭 필요한 발전소ㆍ송전선로 등 전력설비 건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거나 비판적이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전기의 혜택을 받고 살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0년이 조금 넘는다. 전기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고, 사람들은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전기는 한 나라의 산업을 움직이는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전기는 산업의 혈액
우리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전원(電源) 개발계획을 시작, 80년대에 전기보급률 100%를 달성했다. 이제 우리가 생산하는 전기는 품질 면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송ㆍ배전시 손실률은 불과 4%대로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가구 당 정전시간 역시 연간 10분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CBS 방송은 지난달 3일 ‘토마스 에디슨의 최대 발명품이 128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올해 1월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2012년까지 ‘백열전구 판매 금지 법안’을 제출한 것을 두고 한 논평이었다.
‘전기 사랑’을 논하면서 왜 ‘굿바이 에디슨’을 언급하는 지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하지만 이 에피소드야말로 전기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다. 바로 ‘전기 절약’이다. 특히 에너지의 97%를 사다 쓰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이 같은 절실함을 잊지 않는다면 전기절약 실천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백열등 대신 형광등을 쓰면 60% 가량이 절약되고, 에어컨 설정온도를 1℃ 올리면 전력 소비가 7% 줄어든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단 한 번의 관심만으로도 무시하지 못할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전기 절약, ‘전기사랑’ 핵심
편리함에는 그 만큼의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처럼 전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도 그 동안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충분히 지어왔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 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그만큼 전기 소비도 늘어난다. 앞으로 더 많은 전력설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반면, 최근 들어 전력설비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주민을 비롯한 이해 관계인들 사이의 진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필요한 설비들이 제 때 건설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모 신문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에서 ‘똘레랑스(tolerance)’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 기억이 난다. 똘레랑스는 95년 제28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정의된 바 있는데, 한 마디로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관용’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똘레랑스, 관용의 정신이 아닐까. 불신과 반목이 아닌 이해와 신뢰, 대화와 타협 속에 전력 설비 확충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제42회 전기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지 12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다. 그 만큼 ‘올 한해 전기 사랑은 좀 더 특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기 절약’과 ‘전력설비 건설에 대한 똘레랑스’, 이 둘 모두를 생각하는 ‘동상이몽’을 기대한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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