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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중심주의 1년… 달라진 법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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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중심주의 1년… 달라진 법정 풍경

입력
2007.04.0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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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검찰조사 때 진술한 것처럼 대가성을 인정하세요.”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재판이 열린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검찰은 론스타측 로비스트인 하종선 변호사(구속)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를 부인하는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불구속)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변 전 국장도 “검찰조사에서도 금품수수를 인정한 적 없습니다”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보다 못한 재판장은 “검찰은 법정에서 지나치게 피고인을 몰아세우지 마세요. 피고인신문은 검찰청 조사가 아닙니다”며 검찰을 제지했다.

●달라진 법정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법정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공판중심주의가 본격화한지 만 1년이 되면서 법정이 활기를 띠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4월 시범재판부를 만들어 공판중심주의를 실험해왔다.

가장 큰 변화는 피고인이나 증인들의 자유로운 진술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를 악용해 위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 관계자는 “과거 조서재판과 달리 피고인은 재판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재판부는 피고인 진술을 충분히 듣고 판단하게 됐다”며 “위증이 늘고 있다는 것도 그만큼 법정공방이 치열해져 간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재판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속시원히’ 부딪치다 보니 항소율이 34%에서 28%로 떨어졌다. 활력 있는 재판을 위해 법원이 영장심사를 엄격히 하면서 영장발부건수도 2000년 초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반면 법정구속률은 급증했다. 법원 관계자는 “자유변론은 보장하되 유죄는 엄하게 단죄하겠다는 게 공판중심주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산적한 과제

물론 공판중심주의에 대한 이해와 준비부족으로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우선 자유 변론이 허용되면서 재판이 무한정 늘어지는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간단한 형사사건의 경우 과거엔 피고인이 부인하더라도 길어야 1시간이었지만 요즘은 빨라야 2~3시간이다. 재판의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부의 판사1인당 미제사건이 2005년 107건에서 지난해 120건으로 평균 15건씩 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공판중심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검찰이 피고인을 효율적으로 신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선 검사들은 “피고인의 진술을 충분히 듣기 위해 진지하게 접근하면 재판장은 짧게 하라고 압력 넣고 공판조서는 단 한 줄로 정리되기 일쑤”라며 오히려 법원의 준비부족을 비판했다.

피고인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검찰은 피의자 조사하듯 몰아세우며 자백을 강요하는 양상도 일반화하고 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의 조서내용을 부인하면 조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판사들은 “진술 외에 증거가 없는 뇌물이나 마약 사건은 피고인이 검찰조서를 부인할 경우 무더기로 무죄가 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의 최우선 판단자료인 공판조서를 둘러싼 법원 검찰 변호인의 신경전은 공판중심주의 아래 새로 생긴 현상이다. 검찰은 피고인의 진술이 공판조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재판부에 이의를 신청하는가 하면, 법원은 공판조서의 토대가 되는 검찰의 공소장이 불명확하다고 거부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해결책은 없나

법정에서 모든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가리려면 결국 시간과 돈(인력)이 필요하다. 집중심리를 위해 재판부를 늘려야 한다는 데 법원도 공감, 300여명의 예비판사를 정식판사로 돌리는 등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법정에서 쏟아지는 진술과 답변을 재판 당사자들이 생생히 기억하기 어려운 만큼 정확한 문서화 작업도 필요하다. 법원은 법정진술 녹음장치 신설, 속기사 증원 등으로 공판조서를 충실히 만든다는 계획이다.

검찰조서를 무턱대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수사단계에서 녹음ㆍ녹화 했거나 변호인이 입회해 작성한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자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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