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군 송산면 동곡리의 매립지. 디젤 해머(대형망치 같은 중장비)가 지름 60㎝, 길이 20m의 나선형 강관 말뚝을 땅 속으로 내려친다. 초대형 구조물이 들어설 곳의 지반을 튼튼하게 해주는 작업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송악요금소(IC)에서 서쪽으로 7㎞ 정도 떨어진 이 곳은 포항과 광양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일관제철소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이다. 현대제철은 기존 90만평 규모의 당진공장 옆에 130여만평의 부지를 추가로 조성, 철광석과 유연탄으로 쇳물을 만드는 고로(高爐)를 만들고 있다(현재 당진공장은 고철을 사용해 철근과 코일을 생산하는 전기로로 운영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고로 건설을 통해 현재 연간 1,050만톤인 조강 생산능력을 2015년까지 2,250만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첫 삽을 뜬 일관제철소 공사는 이제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수십대의 굴삭기와 덤프 트럭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야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는 대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달부터는 강관말뚝 시험 항타작업을 진행중이다. 이 나선형 모양의 강관말뚝은 작업기간이 콘크리트 말뚝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나사처럼 빼내기도 쉬워 최신 공법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바다쪽에서는 3만~20만톤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 조성공사가 한창인데, 이 공사도 바다부터 부두를 만드는 공법이 적용되고 있다. 물 위에 뜬 뗏목 같은 플로팅 도크(FD)에서 대형 콘크리트 박스 틀을 만든 뒤 원하는 곳으로 옮겨 박스 안을 채우고 물 속으로 가라앉혀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세운다. 이어 콘크리트 벽 안쪽을 메우면 부두가 생기는 방식이다. 특히 서해안 조수 간만의 차가 9m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가장 큰 항만이 건설되고 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 곳은 자연수심이 깊어 서해안에서는 유일하게 20만톤 선박이 정박할 수 있다. 신승주 현대제철 당진공장 홍보팀장은 “일관제철소는 원료인 철광석과 유연탄을 실은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어야 경쟁력을 갖는다”며 “당진은 서해안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물길이 자연적으로 나 있는 천혜의 제철소 입지”라고 강조했다.
기존 제철소가 철광석과 유연탄을 노천에 그대로 야적했던 것과 달리 돔 형태의 실내 원료장을 만드는 것도 눈길을 끈다. 철광석 및 유연탄 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피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제철소에서 이러한 실내 원료장을 별도로 설치하기 처음이다.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향후 당진에는 세계 최고 물류 경쟁력의 철강 및 자동차 클러스터가 만들어진다.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옆에는 이미 동부제강이 자리잡고 있고, 그 옆엔 동국제강이 후판용 공장을 짓고 있다. 강관 전문업체 휴스틸과 철근업체 환영철강 등도 가까운 곳에 있다.
또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북쪽으로 바다를 건너 경기 화성시에는 기아차 화성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직선거리로는 3㎞도 안 되는 거리다. 당진공장에서 남동쪽으로 20㎞ 가량 떨어진 곳에는 현대차 아산공장이 있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으로 출발해 1997년 한보 부도 이후 주인을 찾지 못해 폐허로 버려졌던 이 곳이 이젠 세계 최고의 철강ㆍ자동차 클러스터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수입 철광석이 현대제철에서 강철로 변신한 뒤 현대ㆍ기아차 공장에서 완성차로 재탄생해 전세계로 수출되는 꿈의 산업단지 등장이 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진=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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