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해를 바꿔가며 미국의 겨울스포츠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해 한국계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가 미식축구(NFL) 슈퍼볼을 장악했다면 올해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박용수(31ㆍ뉴욕 아일랜더스ㆍ미국명 리처드 박)가 ‘코리안 파워’를 뽐내고 있다.
박용수는 9일 오전(한국시간) 뉴저지 컨티넨탈 에어라인스 아레나에서 열린 뉴저지 데블스와의 2006~07 NHL 정규리그 최종전 방문경기에서 1피리어드 11분 53초에 선제골을 터트린 데 이어 1-0으로 앞선 3피리어드 7분 51초에 추가골을 터트리며 극적으로 팀의 플레이오프행을 이끌어냈다. 홈팬들 사이에서 ‘박용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
아일랜더스는 동점을 허용, 연장 피리어드에 이어 슛아웃까지 승부를 끌고 간 끝에 힘겹게 이겨 승점 92점으로 토론토 메이플립스(승점 91)를 1점차로 제치고 동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행 마지막 티켓을 움켜쥐었다. 정규리그 82경기에 빠짐없이 출전해 10골 16어시스트를 기록한 박용수는 미네소타 와일드에서 활약했던 2002~03시즌 이후 4년만에 플레이오프 링크를 밟게 됐다.
아일랜더스는 오는 13일부터 동부컨퍼런스 1위를 차지한 강호 버팔로 세이버스와 7전 4선승제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치른다.
지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9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박용수는 아시아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NHL에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집념의 사나이’다.
미국 주니어 대표팀으로 1994년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등 일찌감치 잠재력을 인정 받은 그는 1994년 드래프트 2라운드 50순위로 피츠버그 펭귄스에 지명됐다. 그러나 NHL의 벽은 높았다. 박용수는 1995~96시즌 56경기에 출전했지만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철새’ 신세로 전락했다. 애너하임 오브 마이티덕스,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로 이적했지만 NHL 보다는 하부리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아예 ‘빅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하부리그에서 절치부심한 박용수는 2001년 신생팀 미네소타 와일드에 입단하며 NHL에 복귀했고, 2002~03시즌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다. 정규리그에서 14골을 터트린 그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 6차전에서 극적인 동점골과 역전골을 터트리는 맹활약으로 최강으로 꼽히던 콜로라도 애벌랜치를 무너뜨리는 ‘반란’을 주도했다. 당시 미네소타는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노사 갈등으로 인한 NHL의 직장 폐쇄로 2004~05시즌을 스웨덴과 스위스리그에서 보낸 그는 2005년 밴쿠버 커넉스와 1년 계약을 맺었지만 무릎 부상으로 2005~06 시즌 60경기 출전에 그쳤고 2006년 트라이아웃을 거쳐 아일랜더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박용수는 올시즌 3,4라인의 라이트윙으로 주로 기용됐다. 포인트를 많이 올리는 스타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지만 페널티 킬링팀(숫적 열세에 몰렸을 때 출전하는 스페셜팀)에서 활약하는 등 팀 공헌도가 높은 선수로 꼽힌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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