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75%가 빈곤층인 베네수엘라 라라주의 바리키시메토. 범죄가 일상인 이 도시의 한 구석에서 작은 병정 인형을 세워놓고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지휘하며 놀던 코흘리개 여섯살 꼬마는 20년 후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수장 자리를 약속 받는다.
베네수엘라 빈민가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26진)이 8일 미국 LA 필하모닉의 차기 상임 지휘자로 결정됐다. 2008~09 시즌을 끝으로 물러나는 현 음악감독 겸 상임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의 뒤를 잇게 된 것이다.
두다멜은 갑자기 튀어나온 돌연변이가 아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 ‘시스티마’에 의해 성장했다. 1975년 경제학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범죄와 마약에 찌든 빈민가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악기를 주고, 음악을 가르쳤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는 180여개의 청소년,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보유한 클래식 신흥 강국이 됐다. 최근 SK텔레콤이 시작한 저소득층 어린이 대상 음악 교육 프로그램도 시스티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운 두다멜은 23세에 독일 밤베르크의 말러 지휘 콩쿠르 우승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유럽과 미국 무대에 차례로 데뷔하며 순식간에 스타로 떠올랐고, 지난해 자신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5, 7번(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다니엘 바렌보임, 사이먼 래틀 등 거장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올해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을 내놓을 예정인 두다멜은 스웨덴 예테보리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도 취임하며, 2008년에는 베를린 필을 지휘한다. “음악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 역시 주위 친구들처럼 범죄나 마약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 젊은 마에스트로의 성공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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