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배구, 창조적인 배구만이 살길입니다.”
얼굴은 편안해보였지만 희끗희끗한 수염이 듬성듬성 솟은 얼굴은 초췌했다. 2006~2007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를 3연승으로 격파한 현대캐피탈 김호철(52) 감독. 용인 숙소에서 9일 만난 그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삼성화재를 이겼으니 이제 무서울 게 없다”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제는 생각하는 배구로 정상을 지켜야 합니다. 배구선수는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돌발 상황에 빨리 대처할 수 없습니다. 축구나 농구처럼 공을 받고 나서 생각하면 이미 늦죠.”
선수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 김호철 감독은 ‘무적함대’ 삼성화재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현대캐피탈 전성시대’를 열었다. 영국이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초석을 마련한 것처럼. 엘리자베스 여왕 없는 대영제국을 생각할 수 없듯 김호철이 없는 현대캐피탈은 상상할 수 없다.
“삼성화재 경기는 모조리 비디오로 찍었습니다.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상대 장단점을 파헤쳤죠. 신진식, 최태웅 등의 사소한 습관조차 모두 파악해 작전에 활용했습니다. 이번 챔프전에서는 삼성화재 센터 고희진이 무릎이 아프다는 점을 고려해 속공, 시간차 공격 등 빠른 공격을 펼쳤는데 적중했습니다.”
상대의 단점은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자신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자 ‘무적함대’ 삼성화재는 맥없이 무너졌다.
“상대팀에서 우리더러 센터진이 워낙 좋아서 우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항공 이영택(202㎝)은 우리 (이)선규, (윤)봉우(이상 200㎝)보다 키가 더 커요. 하경민(201㎝)도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아무도 안 뽑길래 2순위로 우리가 뽑았죠. 하경민을 뽑느라 우리는 왼쪽공격수가 부족하잖아요? 결국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물론 선택에 대한 결과는 각자의 책임이죠.”
김호철 감독은 현대캐피탈이 ‘해가 지지 않는 배구제국’이 될 거라는 주위의 평가에 고개를 저었다.
“현대가 우승하는 것보다는 프로배구가 살아나는 게 중요합니다. 명색이 프로인데 네 팀이 싸워 세 팀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는 게 말이 됩니까? 프로배구가 출범한지 3시즌이 끝났지만 한국배구연맹이 약속한 신생팀 창단은커녕 초청팀 한국전력의 프로화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연맹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책임을 지겠죠.”
김호철 감독은 배구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심판의 자질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심판이 오심은 물론 규정까지 어기는 일이 시즌 내내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심판의 권위를 무너트려서는 안 됩니다. 연맹이 프로배구 시상식(6일)에서 심판상 수장자에게 ‘돋보기’를 부상으로 주려고 한 건 이해가 안 됩니다. 심판을 바보로 만들자는 건지…. 답답합니다. 답답해!”
용인=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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