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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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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입력
2007.04.0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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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연극, 사라진 무대, 흩어진 언어들…. 그러나 극장은 때로 소금을 채취하는 염전처럼 배우들의 땀을 기억하는 장소로 남는다.

1일 극단 동의 연극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강량원 대본ㆍ연출)가 대학로 아리랑 소극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기억 속으로 물러났다. 연극은 모처럼 강력한 두 갈래의 드라마를 제공했다. 명작에 담긴 인간성의 드라마, 그리고 배우들이 압박해오는 연기의 드라마.

윌리엄 포크너가 1930년에 발표한 소설을 함경도 사투리로 번안, 재구성해 올린 이번 공연은 극단이 기획한 ‘가족 연극’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카프카의 <변신> , 노동자 계급의 일상과 절망을 극사실로 다룬 크뢰츠의 <아이를 가지다> 를 잇는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가족 이데올로기의 재확인에 안착하는 연극은 아니다.

텍스트가 담고 있는 주제 전달보다는 외려 연기술의 탐구 과정이 눈에 띈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역시 느림과 확장을 통한 연기 에너지의 배분으로 소위 ‘정서의 기억’의 최대치를 끌어 올리려는 연기진의 노고가 인상적이다.

1999년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연극 학도들이 중심이 돼 신촌의 허름한 지하공간에서 창단공연 <페드라> 를 올린 이래, ‘행동’과 ‘말’ 사이에 낀 위태로운 ‘몸’을 탐구하는 이 극단의 화두는 이번 공연에도 올곧게 나타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9일 동안 관을 메고 여행하는 가족의 물리적, 정신적인 여행’으로 요약되는 <내가 죽어 누어있을 때> 는 원작이 취하고 있는 독백의 형식을 더욱 밀도 있게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둔다.

소설이 등장인물 15인의 59개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연극은 이를 11인의 대화체로 바꿔 놓는다. 그러나 막상 대화는 극중 인물이 저마다 품고 있는 욕망과 비밀로 인해 기이하게 고립감을 발하고 두려움, 외로움, 광기, 이기심과 폭력성을 수반한 인간관계는 되뇌임으로 가득한 모놀로그, 대화의 불능성으로 돌아가 버린다.

사실주의를 거부한 무대는 삶 자체가 거대한 ‘관’이라는 듯 집과 환경을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사각 모양 구덩이로 표현한다. 이 속에서 죽은 자의 욕망이 산 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역설과 부조리가 효과적으로 심화한다.

원작에 담긴 인간성의 깊이 있는 질문과 연기 메소드 추구의 진정성을 융합한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 기획사 중심의 대중성과 환금성을 절대시하는 이즈음의 연극제작 풍토 속에서 미학적 추구의 먼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극단 동의 존재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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