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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세상 어지럽히는 짝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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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세상 어지럽히는 짝퉁 언론인

입력
2007.04.0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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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지가 "저널리스트는 낭만주의자"라고 시작하는 서평을 실은 것을 <지평선> 칼럼에 소개한 적이 있다.

서평의 주인공은 뉴욕 타임스의 정치담당 수석기자였던 리처드 리브스라는 언론인이다. 그는 일생의 업을 회고한 저서에서 언론과 언론인이 정치부패 등 공공문제를 순수한 열정으로 천착한 낭만의 시대를 그리워했다.

리브스는 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대중의 취향에 영합해 연예계와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 이야기와 섹스 등의 잡동사니로 가득한 것을 개탄했다. 그러나 언론의 장래에 가장 큰 위협은 대통령을 쫓아낸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계기로 스스로를 현실정치의 한 축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과 행태라고 규정했다.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극단에 이른 선정주의와 정치개입이 대중의 혐오를 부르며 언론의 도덕성을 나락에 빠뜨렸다면서, 언론인 스스로 정치무대에 오른 듯 처신하는 행태를 버리라고 충고했다.

● '낭만주의'와 거리 먼 사이비 행태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의 망언 논란으로 언론 안팎이 어지럽다. 묵은 낭만주의 언론, 언론인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다. 언론과 사회와 정치권은 대체로 KBS 방송 PD 출신인 강 위원이 언론인과 방송위원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양심과 의무를 저버린 것을 개탄한다.

반면 그를 방송위원에 추천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술자리 대화를 몰래 녹음한 행위의 부도덕성과 불법성을 먼저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런 고상한 가치와 어려운 법률관계를 살피기에 앞서, 그를 언론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가 과거 방송에서 언론과 언론인의 고유한 직분에 얼마나 성실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KBS 감사 시절, KBS가 공영방송의 본분을 저버리고 정권을 추종하는 편파보도를 일삼는다고 공개 비판해 거듭 주목 받은 것은 기억한다. 그가 오로지 이런 언행 덕분에 한나라당 추천 방송위원이 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등과의 술자리 대화에서 거침없이 쏟아낸 발언은 그의 평소 자기인식과 처신이 낭만주의 언론인의 덕목과는 거리 먼 것임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뉴욕 타임스의 리브스가 개탄한, '스스로 정치무대에 오른 듯한' 행태와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이런 사이비(似而非)적 행태, 짝퉁 언론인의 모습은 문제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신현덕 전 경인TV 대표에게서도 역력하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모르나 지난해 경인TV 공동대표가 된 직후 경영권 분쟁상대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고 그를 '미국 스파이'라고 국회에서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이 해괴한 폭로의 진상은 검찰수사가 밝히겠지만, 명색이 언론인 출신에 언론기관 대표라는 이가 어느 네티즌 말처럼 '사립탐정' 노릇을 일삼은 것은 듣기가 민망하다. 그의 괴이한 행태에 곧은 언론의 전통을 자랑하는 CBS 방송이 이리저리 얽힌 사실은 한층 개탄할 일이다.

물론 이 너저분한 에피소드의 핵심은 경인TV 경영권 분쟁과 방송위원회의 허가 추천을 둘러싼 갈등일 것이다. 그게 강 위원의 정치중립 논란으로 비화한 듯 하다. 그러나 언론이 언론과 세상을 어지럽히는 유사 언론인의 행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오로지 더 중대한 공적 관심사, 공익 문제를 천착하기 위해서인지 의문이다.

● 객관적 언론 자세 되찾아야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처럼 대화 녹음의 불법성에 집착해야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신 전 대표가 대화 당사자라는 사실만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쉽게 결론 내린 뒤 곧장 녹취록 내용을 보도ㆍ비평하는 데 매달리는 것은 애초 불법성이나 부도덕성을 진지하게 살필 뜻이 없음을 보여준다.

공익적 필요와 동떨어진 사적 이익을 위해 대화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 공개한 것은 불법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

이런 법리를 외면한 선정적 보도는 음험한 사이비들이 언론과 세상을 휘젓고 언론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것을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론부터 냉정한 관객, 객관적 비판자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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