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젊은이가 있다. 꿈과 목표, 처지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baristaㆍ커피 만드는 전문가)’로 일하는 ‘투잡(two job)’족이다.
요즘 젊은 이들 중에서 투잡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커피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 바리스타 투잡족은 어떤 직종에 비해서도 유난히 많은 편이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경우 투잡 종사자 비율은 9.5%나 된다. 회사원 학원강사 방송작가 화가 등 다양한 직업인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사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투잡을 꿈꿔본다. 그러나 결행은 쉽지 않다. 직장 일에 치이다 보면 몸은 천근, 맘은 만근이니 만사가 귀찮다. ‘삶을 업그레이드해보자’는 야무진 ‘투잡의 꿈’은 늘 ‘그런다고 몇 푼이나 더 벌겠어’라는 씁쓸한 자위로 흐지부지된다.
‘투잡스’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나도 투잡족이 될 수 있을까. 바리스타 투잡족인 지미코(26ㆍ여)씨와 서우석(29)씨의 대화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지=주중엔 모 관광청의 회사원, 주말(토ㆍ일 5시간)엔 바리스타로 일해요. 미국인만 상대하는 용산 미8군점에서 근무하다 보니 영어능력이 중요한 회사업무에 도움이 된답니다. 대학시절 틈틈이 했던 스타벅스 아르바이트가 지금은 절대 놓칠 수 없는 두 번째 직장이 된 거죠.
서=전 오전(5시간)엔 바리스타, 오후엔 밴드 베이스기타 주자 및 음악학원 강사입니다. 주업은 고정수입이 없어서 안정적인 일이 필요했어요. 지난해 1월부터 스타벅스 신촌대로점에서 바리스타를 시작했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았는데 4대 보험도 가입해주니 매력적인 제2의 직업이죠. 그런데 주말에 일하면 힘들지 않아요?
지=친구들 심지어 매장을 찾는 고객도 7일 동안 일하는 저를 보고 미쳤대요. 근데 전 오히려 바리스타를 하면서 주중에 받은 스트레스가 풀어지고 새로운 활력을 얻어요. 오래 일하다 보니 커피고객이 가족처럼 여겨져 손님들의 강아지 이름까지 알 정도죠.
더구나 2시간30분 일한 뒤엔 음료 한잔과 휴식이 제공되는 브레이크 타임(30분)을 가질 수 있어서 그 동안은 여느 손님과 다름없이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서=저는 바리스타를 하기 전엔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겐 낮에 전화하는 게 실례일 정도죠. 일이 있으니까 지금은 새벽 5시에 눈을 떠요. 사실 유명가수 세션(그는 가수 홍경민의 베이스기타 주자로 활동했다)을 투잡으로 하면 돈은 벌 수 있죠.
하지만 제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밴드활동에도 지장이 생겨요. 그런 점에서 바리스타는 제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디딤돌인 셈이죠.
지=전 주말에 새벽 4시에 일어나요. 집에서 뒹굴뒹굴 보내면 자괴가 밀려와요. 친구 같은 손님을 만나고 동료 바리스타와 일하다 보면 얻는 게 더 많아요.
사람들은 좋은 직장(관광청) 다니면서 돈에 환장했다고 하는데 돈은 작은 부분일 뿐이죠. 사실 바리스타 수입은 주업의 10%가 안되거든요. 조금만 부지런하면 바리스타 일을 마치고 운동도 하고 약속도 잡을 수 있어요.
서=투잡은 심리적 안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신문배달도 하고 비디오가게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모두 아르바이트 수준이었죠. 돈 버는 기계 같았어요.
그래서 밴드 연습을 하다가도 집중이 안되고 짜증만 늘었는데 지금은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구나’하는 맘이 생겼어요. 특별히 커피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데 인생에서 우연히 행운을 잡은 거죠.
지=엄청난 경험과 시간을 쏟아야 바리스타가 될 수 있다고 오해하는데 집중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요. 일하면서 차차 배워나가면 되니까요.
커피에 대한 지식과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기술도 배우게 되요.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얻는 풍성한 지적 자산이라 시나브로 커피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둘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한데 왠지 핵심이 빠진듯하다. 투잡은 첫발을 내딛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둘은 “투잡은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니 망설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지미코씨는 자신의 이름을 예로 들었다. “미코는 미스코리아의 준말이에요. 주위에서는 말렸지만 아버지는 그냥 이 이름이 좋아서 그렇게 지셨대요. 투잡도 일단 질러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앉아있으면 절대 기회가 오지않아요.”
서우석씨는 “투잡은 어차피 두 번째 직업이기 때문에 본업보다 나은 걸 구할 수 없다”며 “욕심을 버리고 주저없이 마음 편하게 일을 시작하면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돼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밴드가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소망을 갖고 있다.
지씨는 “자동차를 가지고 온 손님의 잔은 〉?채우지 말 것, 주말에 유니폼을 입은 사람에겐 덜 뜨거운 커피를 만들 것 등 나만의 센스가 생겨서 식ㆍ음료 관련 창업을 생각 중이에요.”
둘은 투잡을 통해 꿈을 키워가고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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