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이 뿌리깊던 189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8대1’ 의견으로 흑백분리교육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존 할란 대법관은 “미국 헌법은 색맹이다”며 홀로 반대의견을 냈다.
세기가 바뀐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같은 사안에서 전원일치로 흑백분리교육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시대를 거슬렸던 ‘외로운 반대’가 세월이 흘러 시대를 앞선 웅변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래서 할란 같은 연방대법원에게는 ‘위대한 반대자(Great Dissenter)’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4기째로 접어든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선 누가 ‘외로운 반대자’ 일까. 8일 한국일보 법조팀이 4기 헌재의 선고 내용을 분석한 결과 3기와 4기에 걸쳐 있는 조대현 재판관이 소수의견 횟수에서 단연 선두였다. 헌재 관계자들도 “그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 재판관은 헌재 내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할 정도로 소수의견을 많이 낸 것으로 유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 재판관은 취임(2005년 7월) 이후 20개월 동안 327건의 법령 사건(불기소 취소 사건 제외)에서 동료 재판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45건의 소수의견을 냈다. 그보다 4개월 앞서 취임한 이공현 재판관의 경우 15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재판관은 1년 이상 늦게 취임해 단순 비교가 어렵다.
역대 재판관과 비교해도 그가 얼마나 소수의견을 많이 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헌재에서 ‘외로운 소수파’ 계보로는 이영모ㆍ변정수ㆍ권성 전 재판관이 꼽힌다. 2기 헌재의 이영모 전 재판관은 4년2개월 재임 기간(임기는 6년이나 중도에 정년퇴임) 동안 108건의 소수의견을 내 지금까지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1기 헌재 변정수 전 재판관은 6년 동안 64건이었다.
이와 비교할 때 조 재판관은 2년도 채 안 돼 최다 기록의 절반 가까이 육박했다. 조 재판관의 임기만료는 2011년 7월로 아직 4년 이상이 남아 있어 헌재 내부에서 기록 갱신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변 전 재판관도 “조 재판관이 소수의견을 벌써 그렇게 많이 냈느냐”며 놀라워 했다.
조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1대8 의견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절반이 넘는 24건이다. 2대7 의견은 12건에 달한다. 그 만큼 그의 의견은 ‘소수 중의 소수’였다는 의미다.
소수의견이 많은 것에 대해 “지독한 외곬” “지나치게 튀는 견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기는 하다. 이 때문인지 헌재도 소수의견 통계를 별도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2001년, 2002년 간통죄는 위헌이란 소수의견을 잇달아 내놓았던 권성 전 재판관도 “소수의견이 좋아할 일도 싫어할 일도 아니다”고 했다. 소수의견을 많이 냈다고 해서 반드시 ‘위대한 반대자’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소수의견은 존중받는다. 영미법 권위자인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1개의 반대의견이라도 시대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언제까지 소수의견에 머물지는 않는다”며 “헌재 결정이 사회 전체의 통합에 기여해야 하는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소수의견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 옛 노동쟁의조정법 상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에 대해 변 전 재판관만 유일하게 위헌 의견을 냈으나, 97년 노동법 개정 때 해당 조항이 삭제돼 결과적으로 시대상을 반영하는 의견임이 입증됐다.
▲소수의견이란
헌법재판소는 평의에 참여한 재판관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론을 정한다. 주문이란 이름으로 나가는 이 다수의견이 곧 법정의견(court opinion)이다. 소수의견은 법정의견과 결론을 달리하는 반대의견(dissenting opinion), 결론은 동일하지만 그 이유를 달리하는 별개의견 또는 보충의견을 포괄하는 용어다. 다만 위헌결정을 내리려면 3분의2 이상(6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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