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말한다, 인류의 과거를마틴 존스 지음ㆍ신지영 옮김 / 바다출판사 발행ㆍ468쪽ㆍ1만4,800원
1991년 해발 3,000m의 알프스 산맥 외츠탈에서 5,000여년 전 얼음인간 ‘외치’가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함께 나온 활, 화살, 돌칼 등의 동물 핏자국이나 가죽 옷 등을 볼 때 외치는 사냥을 통해 의식(衣食)을 해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머리카락 동위원소를 분석하자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에게서나 나오는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과만으로 외치의 생활상을 추적하는 것은 무리였다. 고고학자들이 뼈에 남은 동위원소와 창자 속에서 발견된 고기 섬유질의 흔적을 분석하자 그가 육식을 즐겼다는 사실이 함께 밝혀졌다.
여기서 과학자들은 외치의 생활을 이렇게 유추했다. ‘외치는 사냥을 통해 먹을 것을 구했다. 오랫동안 고기를 구하지 못해 한동안 채식을 했지만 그럴수록 고기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 결국 산에 올랐다. 산에서 외치는 사냥에 성공, 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마지막 사냥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대개 글을 통해 후세에 전해진다. 그렇지만 외치의 사례에서 보듯, 문자가 없던 시절은 인류가 남긴 흔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 흔적은 인류의 행동 양식, 당시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을 유추하는 근거가 되며 이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는 인류 역사의 비밀을 푸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고고학자가 직접 역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어떤 것일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저자는 “DNA 분석”이라고 대답한다. DNA의 특성을 연구하고 DNA를 대량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고고학, 생물학이 융합한 생체분자고고학이란 학문이 30여년 전 등장한 것을 보면 그의 대답을 수긍할 수 있다.
생체분자고고학자들은 과거와 달리 유물 자체 뿐 아니라 거기에 묻어있는 얼룩, 지푸라기, 나뭇잎 등 사소한 파편에 더 주목한다. 거기에 묻어있는 고대 동식물의 세포 조직과 DNA 분석을 통해 과거를 추적하는 실마리를 찾는다. 저자가 생체분자고고학자를 ‘DNA 사냥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DNA 분석은 호박에 갇혀 화석이 된 곤충으로부터 고대 DNA의 복구 가능성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쥐라기 공원> 을 쓰기도 했다. 나아가 소설의 논리를 따른 스반테 파보는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통해 DNA 배열을 분석하는데 성공했다. 쥐라기>
한 때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는, 이미 50만~60만년 전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진 근친 관계일 뿐이란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소설의 상상력이 현실로써 증명된 것”이라며 고고학이 소설 못지 않은 흥미로운 분야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은 이 밖에도 인류가 정착해 농업을 시작한 이유, 개와 함께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이동한 사실 등을 DNA 연구를 통해 증명한다. 최첨단을 걷고 있는 현대 고고학에 대한 흥미진진한 입문서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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