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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비애, 스크린을 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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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비애, 스크린을 덮다

입력
2007.04.0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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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지친 발걸음이 스크린 속을 헤맨다. 아름답지도 치열하지도 고매하지도 않은, 퀭한 눈빛과 까칠한 피부의 중년들. 일상의 비루함에 절망하면서도, 끝내 그 일상을 포기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또 한번 눈물을 삼킨다.

가까이 있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우리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2007년 상반기 한국영화가 ‘아버지’라는 화두를 집어 들었다. <우아한 세계> <눈부신 날에> <날아라 허동구> <아들> <성난 펭귄> <마이 파더> <귀휴> <이대근, 이댁은> <가시고기> …. 사연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영화 속 소품 정도였던 아버지의 존재를 스크린 한가운데 박아 놓았다.

어색한 침묵과 묵은 담배냄새 너머에 있던 아버지들이 관객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5일 개봉한 <우아한 세계> (감독 한재림)는 삶에 찌들어 눅진해진 아버지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국사회에서 처자식을 건사한다는 일은 영화 속 강인구(송강호)의 늘어진 런닝셔츠처럼 결코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서서히 가족들로부터 소외돼 가면서도 강인구는 로또복권 몇 장에 꿈을 담고 오늘도 하루 몫의 전쟁을 치른다.

5월3일 개봉하는 <아들> (감독 장진, 주연 차승원)과 막바지 촬영이 진행 중인 <마이 파더> (감독 황동혁, 주연 다니엘 헤니)는 전통적 신파에 한 걸음 더 접근한다.

친아버지를 찾으려고 주한미군으로 자원한 입양아가 사형수인 아버지를 면회하거나(마이 파더), 15년 만에 단 하루의 외출을 허가받은 만기수 아버지가 사춘기 아들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아들).

다양성이 가장 큰 미덕인 한국 영화판에서 이처럼 아버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선웅 한양대 교수(사회학)은 아버지의 경제적 위상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김 교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 앞에 엄한 존재가 아니다”라며 “그런 권위가 사라졌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인간의 내면적 따뜻함이 표출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성애 코드가 영화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2002년 <집으로> , 2005년 <말아톤> 등 모성애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영화계가 관객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코드로 ‘아버지’라는 블루오션을 발견했다는 것.

식상한 멜로나 뻔한 영화적 충격에 무뎌진 관객들에게 소심하고 무능한 아버지라는 소재가 낯선 감동을 자아낸다는 분석이다.

어찌됐든 진솔한 신파가 젠체하는 아케데미즘보다 흡인력이 큰 것이 영화계의 공식. 가족을 위해 올인 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부진의 늪에서 빠진 한국영화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유상호 sh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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