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와 저자는 신간의 발간을 둘러싸고 온갖 희로애락의 과정을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비화와 잊지 못할 장면들이 발생하는데, 특히 역량과 인지도가 있는 저자의 섭외는 쉽지 않은 일이라 편집자들이 오래 간직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1998년 4월에 출간되어 출판계에 신선한 충격과 메시지를 던진 책이 있었다. 편집주간 시절 그 책을 읽자마자 매료되어 러브 콜을 보냈다. 저자는 다음 저작의 원고를 이미 탈고해 다른 출판사와 논의 중이었다.
나는 아직 계약 전이면, 출판사 여러 곳에 동시에 원고를 주고 일주일 후에 각기 기획안을 저자에게 발표하도록 해서 결정하자는 제안을 했다. 저자가 OK를 했고 나는 편집, 디자인, 영업 담당자를 선발하여 밤샘 작업 끝에 최선의 기획안을 짰다. 발표한 지 며칠 뒤에 저자가 연락을 해왔다. 준비한 담당자 모두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만사 제치고 달려갔다. 심사 결과 우리가 가장 잘했지만, 첫 책을 성공시킨 출판사와 두 번째 책까지는 함께 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 날 다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우리는 섭외에 실패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내심 저자의 멋진 우정에 존경을 표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출판사를 막 창업한 어느 여름날이었다. 바로 그 저자가 찾아왔다. 후속작의 연이은 성공으로 더 유명해진 저자는 그 날도 함께 창업한 사람들을 위해 축하주를 사주었다.
다음 날, 그는 ‘낼 만한지 검토해 보시게’라는 이메일과 함께 원고를 보냈다. 2년 전 그 때의 미안함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선물을 담은 특별한 원고였다. 그와 인연을 맺게 해 준 그의 첫 책은 바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이었고, 아름다운 프로의 모습으로 편집자를 감동시킨 주인공은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소장이었다. 익숙한>
창업한 지 만 5년이 지난 올해 초, 저자를 특별 강사로 모셨다. “자신의 무덤에서 생을 다시 설계하라”는 그의 메시지는 우리 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세 권의 책만큼이나 나와 우리를 감동시켰다.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편집자에게 ‘좋은 저자(good writer)’를 넘어 ‘위대한 저자(great writer)’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 기쁜 사례이다.
김학원ㆍ휴머니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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