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 체결로 사법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투자자가 협정 체결 국가를 상대로 낼 수 있는 국제중재소송인 투자자_국가제소권(ISD) 대상에 대법원의 확정판결이나 결정 등 사법부의 판단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자칫하면 사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 대책마련에 나섰다.
대법원은 당초 ISD 대상에 법원 판결은 포함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법부의 확정 판결에 불복한 미국 투자자가 세계은행의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한다면 사법주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반대 이유였다.
FTA 협상 과정에서 법무부가 ISD제도의 검토를 요청하자 대법원이 “ISD 대상에 사법적 판단이 포함되지 않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고 회신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법조계 한 인사는 “투자 상대국의 사법부 판결이 국제중재기관에 제소된 사례는 5건으로 많지 않지만 이 가운데는 해당 법원 판결이 뒤집힌 경우도 있어 사법부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ISD에 법원판결이 포함된 이상 대법원은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됐다. 우선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은 법무부로부터 받은 협정 내용을 토대로 해외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4년 전 서울중앙지법에 처음으로 설치한 국제거래 전담재판부를 확대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ISD의 직접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국제거래 관련 사건 담당 판사의 전문성을 높여 판결을 놓고 미국 투자자와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법원 내부 통신망의 ‘국제거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다른 FTA 협정의 영어 원문을 올려 의견을 교환하는 등 일선 판사들도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 사법제도와 판결이 결코 선진국에 뒤지지는 않지만 소송에 익숙한 미국 투자자들의 성향을 감안할 때 투자나 국제거래와 관련한 재판부의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률시장이 개방돼 현직 판사들이 대거 미국 로펌으로 이직할 가능성도 사법부의 고민거리이다. 독일에서는 능력있는 판사들이 자국 로펌보다 우수한 조건을 제시한 미국계 로펌으로 대거 자리를 옮긴 사례가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판사들이 사직한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하지만 외국 로펌의 진출이 판사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송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 데다 법률시장 개방까지 아직 짧게는 5년이나 남아 있어 대책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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