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국내 고용시장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장기적으론 5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직 혹은 근로조건의 저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FTA가 발효되면 이후 약 5년간 55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진다. 미국산 농산물의 수입으로 타격이 예상되는 농업 부문에서는 4만7,000명이 일손을 놓게 되지만,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각각 13만5,000개와 46만3,000개의 신규 고용이 창출된다.
일자리가 늘어나 총체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개별 직업 구도에는 일대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FTA에 따라 새로 생기는 직업이나 수혜 업종 종사자들은 몸값이 올라가는 반면, 피해 업종 종사자에게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몸값이 높아질 직업
제조업에서는 FTA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인 자동차와 섬유산업 종사자의 전망이 밝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고급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단순 기술직, 수출영업직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가죽과 신발산업 관련 기술전문가도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 관련 기준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미국과의 거래가 늘어나는 만큼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환경전문가도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다. 환경영향평가사, 수질전문가, 대기전문가, 소음진동전문가, 폐기물 전문가 등이 대표적인 부류다.
서비스업에서는 미국 기업의 한국 부동산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관련 분야 전문가, 즉 부동산 금융전문가, 부동산 가치평가사, 부동산 법률 컨설턴트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양국간 교역 증가에 따라 필연적으로 같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무역 분쟁도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만들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협상가와 무역전문가에게 ‘블루오션’ 시장이 기대된다.
전문성 없는 일반 변호사는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기업 지배구조, 지적재산권 등 FTA로 일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분야에 특화된 일부 변호사는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신약 등의 지적재산권이 70년으로 늘어나고, 양국간 특허분쟁도 늘어날 전망이어서 국제변리사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사용자제작 콘텐츠(UCC) 등 저작권 위반 행위에 대한 감시와 고발이 급증, 관련 분야 변호사와 사이트 모니터링 업무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 수 있듯이 FTA 발효로 농ㆍ축산업계 종사자들의 전직이 늘어나면 고용 상담원 수요도 늘어난다. 또 기업별로 고급 인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헤드헌터 시장 확대도 예상된다.
몸값이 떨어지는 직업
제조업에서는 대표적으로 제약분야 종사자의 전망이 어둡다. 국내 제약업체의 복제약 판매가 힘들어지면서 일자리도 줄어들고, 처우도 상대적으로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중미 코스타리카의 경우 미국과의 FTA 체결 이후 제약 부문 일자리가 격감했다. 복제의약품 도매상과 제약회사 영업직 역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법률ㆍ금융 분야 역시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변호사는 특화된 분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금융의 경우 인수합병 활성화로 텔러 등 단순직은 해고 위험성이 높지만, 인수합병 및 첨단 파생금융상품 전문가 등은 몸값이 올라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영화ㆍ방송 분야에서는 케이블TV 프로듀서, 영화 에이전트 등 방송ㆍ공연 종사자의 경쟁은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FTA 체결을 계기로 미국의 거대 영화ㆍ방송 자본의 국내 상륙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규모 미용 체인점과 항공업체들이 진출하면 한국의 영세 미용업체와 항공사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종 불문, 전문성과 영어가 몸값 좌우
전문가들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문화된 고급 인력이 뜨고 단순직은 지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과 경제공동체가 된 만큼, 미국의 관련 분야 자격증이나 국제 공인 자격증을 취득하면 그만큼 몸값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또 미국을 포함한 해외 취업의 기회가 높아지는 만큼, 영어 구사능력은 더욱 필수적인 취업 요인으로 떠오르게 된다.
한국고용정보원 김중진 직업연구센터장은 “한미 FTA 이전에도 전문ㆍ고급직과 단순직의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있었다”며 “FTA는 양극화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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