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회의 검증이 헛바퀴를 돌고 있다. 국회는 협상 타결 직후부터 협상내용을 보고 받고 문제점을 따지겠다며 한미 FTA특위와 유관 상임위를 잇따라 소집,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협상수석대표를 출석시켰으나 6일까지 무엇 하나 소득이 없다는 평가다.
새로운 사실이나 논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국회는 협상타결 이틀만인 4일 통외통위와 농해수위를 서둘러 개최했고, 이날엔 특위와 산자위 문광위 정무위를 열었다. 국회도 모자라 일부 정당까지 김 본부장 등을 불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현상은 우선 국회가 협상 결과를 내실 있게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국회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앞으로 어떤 절차를 밟을지가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이날 한미FTA특위는 정부측에 영문 협정문이라도 제출하라는 의원들의 요구로 시끄러웠다. 그간 정보 제공이 부실했다는 볼멘 소리도, 특정 의원만 일부를 열람했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소란은 “조문에 대한 양국간 협의가 끝나야 공개할 수 있다”는 김 본부장의 한마디에 정리되고 말았다. 국회 청문회 실시여부도 FTA 찬반론자들 사이의 힘겨루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비준동의안을 심의ㆍ의결할 통외통위와 한미FTA특위가 동시에 가동되는 것도 두서 없음을 알게 한다. 이틀 간격으로 열린 두 위원회에서 정부는 2일 타결 직후 발표한 ‘경제적 영향 및 기대효과’, 3일 발표한 ‘보완대책’ 등을 문구만 조금 바꿔가며 제출했다. 통외통위와 특위에 모두 속한 한 의원은 “시간 낭비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당수 의원의 질의 수준도 문제다. 정부측 보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거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되풀이해 묻는 정도였고, 일부 의원은 지역구 현안을 놓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이날 방송ㆍ통신분야를 다룬 문광위는 아예 한 방송위원의 정치적 발언을 놓고 공방을 벌이느라 협상 결과에 대한 검토는 거의 하지 못했다.
한 특위 의원은 “전체의 내용을 모르는데다 전문적인 대목이 많아 의원들이 핵심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아울러 특위 내에 전문가 위원회를 두거나, 이해집단과의 소통구조를 만들지 않은 것도 큰 실책”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허윤 교수는 “검증 절차와 세부 시스템을 거의 갖추지 못한 국회가 얼만큼 검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앞으로 중국과 EU, 일본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회의 검증권한과 절차를 규정한 통상절차법을 제정하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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