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참 편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뜬금 없이 하곤 한다. 뭐 뒷이야기를 들어볼 필요도 없이 난 그 말이 내 남편 노다씨를 의미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사실 손님을 초대한다고 생각하면 나에게 요리는 뒷전이요, 머리 속은 오늘은 어떤 분위기로 테이블을 꾸밀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벌써 나도 결혼 6년차 주부다. 새내기 주부 티를 막 벗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근사한 저녁상을 차려본 기억은 없다. 가끔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무작정 초대만 하고 결국 요리는 노다씨에게 넘어가기가 부지기수.
그런데 우리랑 6개월 차이로 뒤늦게 결혼한 시누이가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2년이 지나서야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보게 된 시누이네 부부 덕분에 한동안 바쁘게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맛집 기행을 펼치기만 열흘 남짓이었을까. 아차, 집에서 내가 음식을 만들어 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누이 부부와 며칠 후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자고 찰떡같이 약속을 하고서는 내 마음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떤 음식으로 대접할까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내가 만들기로 한 것은 ‘갈릭 스파게티’와 ‘애플 사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면 요리이기도 하지만 갈릭 스파게티는 시누이와 나의 추억이 있는 요리이기도 하다. 내가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시누이 집에서 2~3일간 머무른 적이 있다. 그 때 시누이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 준 요리가 바로 이 갈릭 스파게티이다.
물론 그 전에도 노다씨는 나에게 주말 점심으로 갈릭 스파게티를 종종 만들어 주곤 했지만 시누이가 우리 부부를 위해 만들어 준 갈릭 스파게티는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사실 내 입맛은 완벽한 토종이라 잘 만들어진 스파게티보다 매콤한 비빔면에 주관적인 한 표를 던지는 편이지만, 갈릭 스파게티만큼은 내게 어느 국수보다 특별한 한 표를 얻어내는 최고의 요리이다.
가장 먼저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간편한 조리법이다. 일단 큰 냄비에 물을 팔분 정도 부어 팔팔 끓인 다음 스파게티 면을 삶아낸다. 그리고 나서 마늘을 얇게 편으로 썰어 올리브 오일에 볶다가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면을 넣어 같이 볶아주기만 하면 된다.
기호에 따라 다른 향신료가 가감될 수 있지만, 나는 이 기본 갈릭 스파게티에 오레가노와 바질을 뿌려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기본 스타일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그 맛은 담백하면서 구워진 마늘 향이 은근하게 입안에 남아 개운함을 선사한다.
그 어떤 요란하고 진한 소스를 곁들인 스파게티의 맛보다 최상에 서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스파게티 면 자체의 맛도 느낄 수 있으면서 은근히 삽겹살이나 갈비를 구울 때 불 위에서 지글거리며 기름장에서 익어가는 마늘을 건져 먹는 그런 맛이 가미되어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는 스파게티가 된다.
가끔 스파게티 면을 몇 분이면 가장 맛있게 삶아낼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별 다른 방법은 없다. 끓이면서 맛을 보는 방법이 최고. 면의 건조 상태에 따라 7분이 될 수도, 10분이 될 수도, 그 이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처럼 요리가 끊이지 않는 집에서는 면의 사용 빈도수도 잦아져 그만큼 건조 상태가 심하지 않아 8분 정도를 삶아내면 맛있는 스파게티 면이 되지만, 그것도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구입한 면 자체가 수입한지 오래되어 자연건조가 더 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이렇게 준비된 스파게티에 살짝 구운 베이컨을 같이 곁들여 훈제된 맛을 가미하고, 파슬리 가루를 살짝 뿌려 개운함을 더한다.
너무 진하지 않으면서 가벼운 레드 와인을 한잔 곁들여 간단한 저녁상을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노다씨의 아이디어로 그 날 저녁에는 애플 사이다를 첨가하게 되었다. 외국에서는 흔히 마시는 음료인데,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사과로 만든 수정과나 식혜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사과를 믹서에 곱게 갈아 냄비에 붓고 물을 넣은 뒤 통 계피를 두어 개 집어 넣고 푹 끓인다.
이 때 고운 사과 알갱이들이 둥둥 떠다니는데 이것을 걷어내지 않고 흑설탕과 생강을 넣어 다시 한번 푹 끓인다. 그리고 나서 위를 말끔히 걷어내면 약간 수정과와 유사한 맛이 나는 애플 사이다가 완성된다. 막 끓여내서 따뜻하게 먹어도 좋지만 미리 만들어 놓고 식혀 차게 내도 좋다.
술을 못하는 노다씨로서는 와인대신 홀짝홀짝 마시며 같이 기분을 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 애플 사이다는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웰빙의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요즘은 너무나 손쉽게 오가닉 음료를 구입해서 마시고 마치 그것이 최고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진정한 오가닉에는 사람에 정성이 빠지면 안된다는 것을 이 날 저녁을 통해 깨달았다고 할까. 그 날의 담백한 갈릭 스파게티와 애플 사이다는 환상의 커플처럼 멋진 조화로 저녁상을 화기애애하게 해주었다.
1. 갈릭 파스타
재료 : 파스타 440g, 깐 마늘 2개, 홍고추 3개, 청양고추 2개, 칠리페퍼 6~8개, 향신료(월계수, 바질, 타임, 오레가노) 1g, 베이컨 8장, 버터 2큰술, 올리브오일 150cc, 소금 후추 적당량
▲ 재료 손질하기
마늘은 편으로 썰고, 홍고추와 청양고추는 길게 어슷하게 썬다. 칠리페퍼는 대충 손으로 뜯는다.
▲ 프라이팬에 재료 볶기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베이컨을 넣어 중불에서 굽는다. 베이컨이 노릇해지면 건져내고 손질한 마늘과 칠리페퍼, 향신료를 넣어 약불로 볶아낸다. 마늘이 노릇해지면 불을 끄고 마늘만 건져낸다.
▲ 스파게티 면 삶기
스파게티 면을 끓는 물에 약 9~10분 삶아 건져내 물기를 뺀다.
▲ 모든 재료 넣고 볶기
중불의 팬에 버터를 넣고 지글지글 끓으면 스파게티 면과 볶아낸 재료를 넣고 다시 한 번 볶아준다. 이때 소금으로 간을 하고 후추로 향을 낸다.
▲ 담기
그릇에 파스타를 올리고 노릇하게 구워놓은 마늘, 청양고추, 홍고추, 베이컨을 올린다.
파스타는 일반적인 파스타를 사용하면 된다. 마늘을 너무 강한 불에서 볶으면 올리브오일이 타버리기 쉽다. 최대한 낮은 온도에서 볶아낸다.
2. 애플 사이다
재료 : 사과 2개, 통계피 50g~60g, 물 2ℓ, 흑설탕 200cc, 생강 100g,
▲ 사과, 통계피 물에 넣어 끓이기
사과는 믹서나 강판에 곱게 갈아 통계피와 함께 물에 넣어 푹 끓인다. 끓이면서 나오는 불순물은 제거하지 않는다.
▲ 끓인 사과에 흑설탕과 생강 넣기
푹 끓으면 흑설탕과 생강을 넣어 다시 1시간 정도 끓여주고 차게 식혀둔다.
김상영 푸드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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