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작년 11월 17%까지 내려갔던 지지율은 협정타결 직후 실시된 각 여론조사에서 32%까지 올라갔다. 노 대통령은 오랜 '식물대통령' 상태에서 벗어나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돌아왔다. 대통령도 국민도 편안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FTA 타결로 생존의 뿌리가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저항이 격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지율마저 곤두박질 친다면 얼마나 민심이 흉흉하겠는가. 격렬한 저항과 갈등 속에서도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노 대통령의 행운이다. 그리고 10개월 밖에 남지않은 임기를 생각할 때 이번이 마지막 행운이 될 가능성이 높다.
● 국가 최고지도자로 돌아와
노 대통령은 이 기회를 잘 관리해야 한다. 다시 국민의 지지를 잃는다면 불행한 대통령으로 물러갈 수밖에 없다. "당신은 실패했다"라고 대다수 국민이 차갑게 고개 돌리는 이별을 상상해 보라.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FTA 타결과정에서 어떤 점이 국민의 마음을 잡았는지 잘 분석할 필요가 있다.
FTA 타결 이후의 지지율 상승은 반대세력으로부터 왔다. 어제의 지지세력과 동지들은 FTA 반대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단식 농성 중이었다. 노 대통령의 가장 큰 '적'이었던 보수적인 신문들은 일제히 노 대통령의 'FTA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우호적이던 진보적 매체들은 노 대통령이 진보로 위장했던 신자유주의의 본색을 드러냈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비판세력이 'FTA 리더십'을 지지하는 배경에는 한미 FTA가 선진한국으로 가기 위한 미룰 수 없는 선택이라는 훌륭한 명분 이외에 FTA가 자신들에게 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그들은 FTA 반대 시위에서 절규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노 대통령의 FTA 리더십에는 분명히 종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한미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상황인식과 흔들림 없는 추진력을 발휘했고, 절제된 언행을 유지했다. 2일 저녁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그의 얼굴은 밝았고, 담화 내용은 깨끗했다. 적개심, 원망과 노여움 같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한미 FTA는 정치의 문제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다. 민족적 감정이나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일이 아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그는 호소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가 찬반양론 속에 추진해 온 과제들을 생각해 보았다. 지방화, 교육, 과거사, 부동산, 북한관련 정책들에 대해서 같은 접근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육은 정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를 훌륭한 인재로 키우는 일이다. 우수한 인재를 키우지 않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주택가격 안정은 강남 죽이기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주의 기본에 관한 문제다…"
만일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말하고 접근했다면 그 동안의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을 줄이며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부적절한 언행과 이념 과잉으로 본질을 오도하는 경우가 많았고, 정책과 성과가 바른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 남은 임기 재평가 기회 되길
노 대통령이 한미 FTA 타결과정에서 보여준 분명한 상황인식과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호소는 남은 10개월에 기대를 갖게 한다. 만일 그가 남은 임기동안 최선을 다한다면 저평가된 그의 업적들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살아나고, 그가 강조해온 '진정성'도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FTA 체결이후의 반짝 인기, 그 마지막 행운을 잘 활용하기 바란다. 그러나 지지율이 올라가면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등의 의욕은 아예 갖지 말아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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