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법무실 소속의 김중원(40) 변호사는 물품 구매와 기술 도입 협상을 위해 지난해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으로 3차례나 출장을 다녀왔다.
그는 현장에서 물품 단가를 낮추기 위한 상대방과의 머리싸움과 계약서 작성 등 협상의 전 과정에 참여했다. 김 변호사는 “계약서 초안이 구상되는 단계부터 법률 검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예상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엔 협상팀이 외국기업과 협의를 통해 계약서 초안을 만들고 이를 국내로 전송해 법무실에서 법적 검토를 마친 뒤 다시 협상팀에 보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 한화에는 김 변호사처럼 계약이나 협상 현장이라면 언제 어느 곳이든 달려갈 수 있는 사내 변호사가 14명이나 있다.
●FTA 개방물결 사내 변호사로 뚫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무제한의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았다. 그만큼 법률분쟁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일찌감치 사내 변호사(In_House Laywer)를 확충하며 개방 파고에 대비하고 있다.
신입사원 가운데 법학계열 출신자들을 모아 법무팀을 운영하던 기업들이 이제 중견 변호사는 물론이고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신출내기 변호사까지 율사(律士)들을 대거 영입, 경영 일선에 속속 투입하고 있다.
국내에서 사내 변호사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삼성그룹이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직전인 1996년 판ㆍ검사 출신 변호사를 법무팀에 영입하면서부터. IMF 직후 변호사 공개모집을 통해 본격적인 사내 변호인단 구성에 나섰던 삼성은 현재 국내 변호사 90여명, 국제 변호사 60여명을 포함해 150여명의 대규모 법률자문단을 갖추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LG SK 한화 등도 그룹별로 10~20여명의 사내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다.
최근엔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신참 변호사들의 영입도 활발한 편이다. 99년 연수원 수료생 8명이 기업으로 처음 직행한 이후 지난해 47명이 사내 변호사로 진출했고, 올해엔 37명이 기업행을 택했다.
●기업 위험관리에 필수 존재
글로벌 경쟁시대에 기업의 위기관리(Risk Management)를 위해선 사내 변호사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상장기업 피소건수는 2000년 18건에서 2004년 326건으로 급증했다. 소비자들의 권리의식 향상으로 기업의 위험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김현 사무총장은 “과거에는 기업들이 분식회계 등 대형사고가 터진 뒤에야 법률적으로 뒷수습하는 차원에서 변호사를 찾았던 게 사실”이라며 “사내 변호사는 앞으로 닥칠 법률적 위험을 예상하고, 위험 요소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예방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조근호 부원장은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사내 변호사는 기업보험의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전체 변호사의 10%가 사내 변호사인 미국에 비하면 우리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다국적 금융기업인 씨티그룹 한 군데서 무려 1,500여명의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고 제너럴 일렉트릭(GE)도 사내 변호사가 1,164명이나 된다. 우리의 경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사내 변호사에 눈길도 주지 않는 형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월 220개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내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은 61개(21.7%)에 불과했다. “변호사를 영입해 놓으면 1,2년 일하다 뛰쳐나가기 일쑤인데 어떻게 믿고 맡기겠느냐”는 기업측 불만과 재능 있는 율사들은 판ㆍ검사나 대형 로펌을 선호하는 현실이 사내 변호사 확대의 걸림돌로 분석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법률시장 개방과 로스쿨 도입에 따른 변호사의 공급 증가 ▦가중되는 기업 규제와 경영의 글로벌화에 따른 법률수요 확대 등으로 사내 변호사의 덩치도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기업들의 법률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사내 변호사들이 회사 경영에 참가하는 단계까지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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