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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자동차기술硏, 새 차 충돌시험 현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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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자동차기술硏, 새 차 충돌시험 현장 가보니

입력
2007.04.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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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크루즈 시속 15㎞ 충돌시험 시작합니다. 카운트다운 셋, 둘, 하나, 출발!".

출발선에서 얌전히 그르렁거리던 차가 바닥 아래 센서가 박힌 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표는 15도 각도로 비껴 세운 육중한 철제 구조물.

세상에 나온 지 갓 11일 된 4,100만원 짜리 베라크루즈의 첫 임무는 주인을 태우고 달리는 게 아니라 벽에 부딪치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는 일년 내내 새 차를 사다 '망가뜨리는' 게 일이다. 바로 충돌시험을 통해서다.

언뜻 보험관련 기관이 차 충돌시험을 왜 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손해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영업에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다. 지난달 26일 연구소에서 열린 현대 베라크루즈 충돌시험 현장을 찾았다.

국내 유일의 차대차 충돌 시험장

현재 국내에서 실제상황처럼 차와 차를 맞부딪치는 곳은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유일하다. 현대나 GM대우 같은 자동차 제조사마다 새 차의 성능 실험을 위해 대규모 시험장을 갖추고 있지만 이들은 자사 차량만을 벽에 부딪친다.

각 사의 차량을 모아 비교ㆍ분석하는 곳은 국내에 딱 두 군데. 그나마 안전성 실험을 주로 하는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성능연구소는 차에 체인을 달아 끌어당기는 '견인' 방식이어서 차대차 실험은 불가능하고 실제 사고와도 차이가 있다. 박진호 선임연구원는 "실제 사고를 그대로 재연하는 곳은 우리 뿐"이라고 강조했다.

실험 한 번에 폐차 신세

연구소는 지난해 약 1억원을 들여 산 새 차 4대를 실험 후 바로 폐차 처리했다. 고속(시속 48ㆍ56ㆍ64㎞) 충돌한 차는 고쳐봐야 수리비가 더 나오기 때문이다. 저속(시속 15㎞) 실험한 새 차 7대(약 2억원)는 그나마 수리 후 되팔아 70%(약 1억4,000만원) 가량을 남겼다. 결국 딱 한 번의 실험을 위해 1억 6,000만원을 쓴 셈이다.

연구소측은 "제조사에 부탁하면 싸게 살 수도 있지만 공정성을 위해 매번 대리점에서 일반인과 똑같이 구입한다"면서도 "멀쩡한 새 차가 순식간에 고물이 되는 모습은 우리가 봐도 솔직히 아깝다"고 했다.

0.1초의 미학

모든 실험은 국제기준에 맞아야 한다. 승객은 운전자 한 사람만 타야 하고 기름은 꽉 채워야 하며 스페어타이어도 꼭 달아야 한다. 특히 충돌 시 속도가 중요하다. 시속 1㎞만 빠르거나 늦어도 신뢰도를 인정 받지 못하기 때문.

연구소의 박인송 시험연구팀장은 매번 실험 때마다 충돌지점 30m 앞 지점에서 눈을 부릅뜬다. 속도, 방향이 찍히는 컨트롤러와 실제 차량의 진행 상태를 보며 0.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고냐 스톱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수천만원 짜리 차가 엉뚱한 속도나 방향으로 부딪치면 그야말로 돈을 허공에 날리는 셈. 다행히 아직 실험 실패는 없었다.

박 팀장은 "재작년 비오는 날 차대차 충돌시험 때 한 차량이 출발과 함께 미끄러지면서 속도가 안 맞아 정지 명령을 내린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회상했다.

"로비요? 말도 마세요"

연구소가 충돌실험을 하는 이유는 각종 차량의 사고 시 손상성과 수리비 정도를 알기 위해서다. 이를 토대로 차 제조사에 차량설계나 구조 개선을 제안하기도 한다.

수리비가 적게 들어야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가벼운 접촉사고로 2,000원 짜리 연결고리(브라켓)만 바꾸면 될 전조등 부분도 제조사들이 부품을 굳이 일체형으로만 공급해 7, 8만원 짜리 전체를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소가 차량별 안정성 차이를 발표할 때마다 이미지 실추를 걱정하는 제조사들은 난리다. 발표를 앞두고는 "우리 회사 차는 좀 빼달라"는 로비도 적지 않다.

김병호 소장은 "공정성을 위해 아예 실험 때 제조사 관계자를 참여시킨다"며 "실험결과 발표 때문에 차량이나 부품 설계를 고치는 제조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글 김용식기자 jawohl@hk.co.kr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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