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 한 명은 케이블TV에서 <반지의 제왕> 이 방영되면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고 한다.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을 우연히라도 보게 될까 봐, 아예 전원을 끄거나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는 것이다. 반지의>
왜 그래? 내가 의아해서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내가 저 영화 원작 소설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영활 보고 내가 상상한 거하고 다르면 어떡해. 친구의 반응은 좀 예민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활자를 보면서 우리가 마음 속으로 품었던 상상과 전혀 판이한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그랬고, <태백산맥> 이 그랬으며, <주홍글씨> 가 그랬다. 주홍글씨> 태백산맥> 우리들의>
사실, 그것은 영화 제작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활자가 불러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상상이, 시각화라는 편협하고 왜소한 감각으로 재편될 때 벌어지는, 별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가 영화로 개봉되었다고 한다. 향수>
그래, 나도 걱정이다. 나 또한 밤새 그 소설을 읽으며, 내 안에 많은 것들을 이미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보고는 싶지만, 보고 나면 금세 깨지고 마는 성벽. 시각이 어찌 촉감과 후각을 이기랴.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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