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값이 떨어질 게 뻔한데 누가 송아지를 사겠어요. 다음 장날엔 값이 더 내려갈 텐데 오늘 다 팔아버려야겠어요.”
4일 오전 5시 충남 홍성군 광천우시장. 하늘이 채 열리지도 않은 새벽녘 낮고 굵은 소 울음소리가 길게 깔린 시장 한 켠에서 만난 한만복(60ㆍ홍성군 금마면)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40년간 소를 키웠다는 그는 “지육 1㎏에 9,000원정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나왔는데 8,200원을 받아 40만원이상 차이가 났다”며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기 전에 남은 소를 모두 정리해야겠다”고 말했다.
년간 1만2,000∼1만3,000여 마리의 소를 거래하는 우시장의 분위기는 FTA가 타결 직전에 열린 닷새 전 장날과 너무 달랐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오전5시부터 8시까지 중개인의 큰 목소리와 소를 사고 파는 사람간의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장터를 뜨겁게 달구었으나 이날은 활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날 우시장에 나온 소는 375마리로 평소와 비슷했으나 가격은 600㎏ 기준으로 평균 25만원이 내렸다. 농민들의 우려가 벌써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농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기운이 쑥 빠진 모습이었다. 새 주인을 기다리는 송아지 곁에서는 싼값에 넘겨야 하는 주인들이 담배만 뻑뻑 피우고 있었다.
일부 농민들은 소 매매를 일찌감치 포기한 채 우시장 한 켠에 있는 식당으로 몰려 들어 술잔을 기울이며 추위와 근심을 녹였다.
송아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가 시장에 깔리면 값이 더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장에 나온 30여마리 가운데 9마리만 거래됐고 축협이 구매한 8마리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거래된 것은 달랑 1마리였다.
부여에서 송아지 7마리를 팔러 온 농민 이모(48)씨는 “가격이 뚝 떨어져 매매를 포기했다”며 장이 끝나기도 전에 송아지를 모두 트럭에 태웠다. 이씨는“자식 같은 녀석들을 어떻게 손해보고 팔겠느냐”며 황망히 시장을 떠났다.
송아지 9마리 가운데 한 마리도 못 팔고 있던 이원영(51ㆍ예산군 예산읍)씨는 파장무렵 축협에서 4마리를 구입해줘 겨우 운임을 건졌다.
이날 못 판 송아지는 7일 서산장날 팔아볼 생각이라며 발길을 돌렸다. 이씨는 “송아지를 사면 최소 2년은 키워야 되는데 그때 소 값이 어떻게 될지 알고 사겠느냐”며 “대기업만 살리고 농민들은 죽여도 되느냐”고 정부를 성토하기도 했다.
홍성축협 우시장담당 이운영씨는 “농민들의 투매를 우려했지만 거래두수가 평소보다 조금 밑돌아 다행”이라며 “수입소가 시장에 퍼지면 소규모 축산농가를 중심으로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홍성=글 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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