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투자자가 상대 국가를 상대로 낼 수 있는 국제중재소송 범위에 사실상 공중보건ㆍ환경ㆍ안전ㆍ부동산 분야의 정부정책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그 동안 투자자-국가제소권(ISD) 대상에 부동산 정책 등은 제외됐다고 밝혔으나, 협정문에 ‘예외적인 경우(In rare circumstances)’에 허용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정부 정책이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됐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4일 발표한 ‘한미 FTA 분야별 최종협상 결과’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대상이 되는 ‘간접수용의 범위’에서 보건ㆍ안전ㆍ환경ㆍ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 등을 원칙적으로 제외하기로 했으나, 예외 조항도 함께 두기로 했다. 예외 조항은 정부 조치의 강도가 ‘극도로 지나쳤을 경우’ 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간접수용이란, 특정 정부 정책이나 조치로 인해 투자자가 사실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됨으로써 투자 가치가 직접수용과 동등한 정도로 박탈되는 경우를 뜻한다.
정부는 미국 투자자에게 간접수용 제소권을 지나치게 인정할 경우, 정부 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환경ㆍ부동산ㆍ조세 정책 등은 제외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정부 관계자는“예외규정으로 인해 정부의 환경ㆍ부동산 정책 등이‘극도로 지나친 것’인지 판단을 받아본다는 차원에서 투자자들이 얼마든지 제소할 수 있게 됐다”며 “사실상 제약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조세 정책의 경우 예외 규정 없이 원칙적으로 투자자-국가제소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 역시 제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엄밀히 조세 정책과 관련된 것인지 판단을 받아보려고 한다면 제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환경ㆍ부동산 등 정부의 모든 분야의 주요 정책에서 중재 제소를 통해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의 정책이나 조치를 무력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령 미국 투자자가 한국에 세운 공장이 허용기준 이상의 오염물질을 배출해 정부로부터 공장폐쇄 조치를 받았을 때 이 투자자는 “환경시설 설치 명령만으로 충분한데, 폐쇄 조치는 지나치다”고 제소할 수 있게 된다.
박은석 법무부 국제법무과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현 협정문상으로는 제소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과장은 “중재 제소는 비용이 많이 들고, 기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투자 유치국 국민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어 제소할 때 조심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진호 법무부 차관은“미국, 유럽 등 전세계 투자협정에서 광범위하게 채택돼 있는 제도”며 “한미 FTA에서 ISD는 미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이후 중국, 아세안 등과 FTA를 체결할 때도 필요한 조항”이라고 밝혔다.
또 “국제중재 판정부는 금전적 배상 또는 재산의 원상회복만명할 수 있어 국제중재 판정으로 우리의 법과 제도 자체가 무효화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한편 법무부는 한미 FTA를 통한 투자자-국가제소권에 대비, 외국사례 등을 연구할 ISD 전담기구를 신설될 ‘정부법무공단’에 두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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