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박수근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을 위조해 팔아온 일당이 검거됨에 따라 미술 시장에 또 한 번 파도가 칠 기세다. 미술계는 외환위기 이후 꽁꽁 얼어붙었다가 최근 10년 만에 겨우 활기를 되찾은 미술시장이 다시 겨울을 맞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가짜 그림이 많이 나돈다는 건 진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위조 조직이 붙잡히기는 처음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수사를 통해 위조범들이 위작을 거래한 내역이 낱낱이 밝혀진다면 화랑이나 개인 소장자들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위작에 대한 경계심으로 미술품 거래가 위축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중섭 그림은 2005년부터 잇따라 위작 시비가 나면서 거래가 거의 끊어졌다가 지난해 12월에야 다시 경매에 나왔다.
위조범 일당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발표에 따르면, 미술품 중간 판매상 복모씨 형제가 무명 화가들을 고용해 위조하거나 가짜를 사들여 유통시킨 그림은 최고 인기 화가인 이중섭, 박수근을 비롯해 천경자, 변시지, 이만익, 변종하 등 24명 108점에 이른다. 위조 공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위작 논란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점이다. 검찰은 지난 해 가을 그 동안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 3,000점을 압수해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맡겼다. 그 결과가 5월에 나올 예정이어서 그 내용에 따라 더 큰 해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위작이 판을 치는 까닭은 부동산과 주식에 이어 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미술시장은 올해 첫 대형 경매였던 서울옥션과 K옥션의 지난달 경매가 각각 회당 낙찰가 1,000억원을 뛰어넘고 박수근 그림 한 점이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인 25억원에 팔릴 만큼 뜨겁다.
미술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조범이나 위작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수사해서 뿌리를 뽑을 것을 주문하는 한편 신뢰할 만한 미술품 감정기구와 감정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최명윤(명지대 문화재보존관리학과) 교수는 “위작 파동이 나도 매번 잠깐 시끄러울 뿐 위조범도 안 잡고 흐지부지 넘겼기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2005년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이중섭 그림을 위작이라고 처음 주장했던 최 교수는 “미술품의 진위를 판단하려면 안목 감정 이상의 과학적 감정이 꼭 필요한데, 국내에는 그럴 만한 전문가가 10명도 안 되고 노하우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당시 문제가 된 이중섭 그림 8점은 모두 가짜로 판명돼 서울옥션 대표가 사임했다.
감정 전문가 양성은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므로 장기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미술계 공통의 의견이다. 이현숙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미술품 위조는 어느 나라에서나 늘 있는 일이고 100% 정확한 감정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감정 전문가를 키우는 데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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