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내가 내용을 잘 몰라. 그러니 찬성도 반대도 아닌 유보로 해줘." (열린우리당 A의원) "당론에 따를 거야. 당론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보고 말하자고." (한나라당 B의원)
본보가 2일 한미 FTA 비준동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는 의원 296명 중 282명이 응했다. 이 가운데 찬반을 확실히 밝힌 의원은 절반을 조금 넘었다. 나머지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유보'라고 답했다.
유보라는 대답도 물론 의미가 있다. 대다수 의원이 판단을 신중히 하겠다는 의미이지 FTA에 대한 소신과 견해가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공산품 분야 타결은 찬성하지만 농업 때문에 반대하니까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며 유보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의원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내용을 모르니 의견도 말할 수 없다"며 피해가는 일부 의원의 행태는 문제다. 다선 의원일수록 더 그랬다.
FTA 협상은 지난해 2월 시작됐다. 이미 1년 넘게 각종 쟁점이 토론됐고, 정부도 국회를 찾아 수십 차례 협상상황을 보고했다. 또 며칠 전부터는 쇠고기와 자동차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합의내용이 언론에 공개됐다. 기본적인 관심만 있다면 내용 파악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용을 몰라서라는 것도 핑계일지 모른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일단 중립지대에 숨고 보자는 얄팍한 처신의 결과라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여론의 눈치를 살핀 뒤 대세를 좇겠다는 심산이라는 것이다.
국회에는 이런 의원들이 원래 적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라는 의원들의 정책적 소신과 책임감이 이래선 곤란하다.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는 한미 FTA 비준을 이들에게 맡겨도 괜찮은 것일까.
정상원 정치부 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