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는 단지 시시한 코미디 단골소재로 등장하지만, 여장남자는 성 정체성을 교란하는 일발 장전의 웃음폭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닐 조던 감독의 <크라잉 게임> 이나 <플루토에서 아침을> 은 약속이나 한 듯 IRA로 몰려 감옥에 갇히고, 목숨이 위태해진 청년들의 슬픈 이야기, IRA로 오인되는 청년들이 복장도착자라는 색다른 공식을 내세운다. 대체 왜 일까? 어찌 성의 정치학이 아일랜드의 부박한 역사와 맞아 떨어져 깊고 슬픈 역사적 공명의 울림을 내는 것일까. 플루토에서> 크라잉>
<크라잉 게임> 과 <플루토에서 아침을> 의 청년들은 모두, 보수적인 카톨릭사회의 소수자로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역사와 살을 맞대어 살아간다. 닐 조던 감독의 <플루토에서 아침을> 에는 그 제목처럼,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인 명왕성에서 아침식사를 꿈꾸는 청년 패트릭이 등장하는데, 그는 신부를 아버지로 둔 여장남자로, 런던에 있을 어머니(그가 phantom lady라 부르는)를 찾아 헤맨다. 그런데 막상 전화국 직원을 가장하고 만난 어머니 앞에서는 그만 졸도하고 만다. 한마디로 패트릭은 아일랜드 역사와 카톨릭제도가 낳은 사생아로서, 영국에 의해 배척 받고 탄압당하는 소수자인 아일랜드 현대사 그 자체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플루토에서> 플루토에서> 크라잉>
그는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 줄 것 같은 런던 혹은 영국, 혹은 어머니를 찾아 헤매지만 그곳에서 착취와 조롱과 멸시, 심지어 살인의 위협까지 당할 뿐이다. 훗날 신부였던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나는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아버지를 찾게 되었다’는 의미심장한 고백을 하는데, 여기에는 그 모든 영국적인 것을 동경하면서도 결국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일랜드의 품으로 돌아가는 아일랜드의 자기 긍정의 힘이 느껴지지 않은가.
그러니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 자, 주류에 끼지 못한 사람들, 세상이 품어주지 못하는 인간들은 어찌 보면 모두 여장남자들이다. 웃음으로 포장했지만 <플루토에서 아침을> 은 아일랜드 사회에 대한 역사적 발언이며, 소수자인 아일랜드인들이 어떻게 차별 당했고 멸시 당했으며 오인 받았는지에 관한 슬프디 슬픈 우화이기도 하다. 플루토에서>
이쯤에서 기억 나는 영화 한 조각. <보리밭에 부는 바람> 에서 주인공 데미안은 스파이 노릇으로 사형에 처해진 동네소년의 심장에 총을 겨누며, “아일랜드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플루토에서 아침을> 은 영국감독인 켄 로치의 이러한 발언에 대한 아일랜드 감독인 닐 조던의 의미심장한 화답이다. 플루토에서> 보리밭에>
아일랜드인에게 아일랜드는 아직도 지켜내야 하는 땅, 평화의 씨를 뿌려야 하는 땅이라고. <플루토에서 아침을> 은 아프게 가볍고, 유쾌하게 통쾌하다. <프리실라> 에서 <헤드윅> 을 거쳐 <플루토에서 아침을> 까지. 헐리우드에서 벗어난 여장남자들은 주류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비록 스커트를 입었지만, 어느 인간 못지않은 진정성의 맨 힘으로.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인 견고한 이 세계의 편견이란 성을 부순다. 5일 개봉. 15세관람가. 플루토에서> 헤드윅> 프리실라> 플루토에서>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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