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한국 간판 타자들의 맞대결. 일본프로야구의 중심부인 도쿄돔이 후끈 달아 오를 만도 했다.
훈련 시작 한 시간 전인 3일 오후 1시께 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승엽(31ㆍ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표정이 조금은 상기돼 보였다.
“몸은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괜찮다”고 짧게 답한 뒤 라커 룸으로 들어간 이승엽은 유니폼이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고 1시20분께 외야로 나가 30여분간 묵묵히 러닝을 했다.
이마에 땅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이승엽은 “우리가 우승을 하려면 주니치에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말로 주니치전 각오를 대신했고, “지바롯데 시절 2년 동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내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 병규형은 감독이 믿어주는 만큼 편안하게 자기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어린 기원을 아끼지 않았다.
같은 시간 숙소에서 이동 채비를 서둘고 있던 이병규(33ㆍ주니치 드래곤스)는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대스타로 각광을 받고 있는 후배와의 첫 대결을 앞두고 애써 평정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팀과의 경기와는 기분이 다르지만 승엽이랑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요미우리를 꺾기 위해 왔다. 일본 야구에 적응하기까지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이병규는 “승엽이와 전화 통화를 자주한다”고 소개하면서 라이벌이자 동반자인 고국 후배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직 정상 컨디션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던 이승엽은 프리배팅에서 이병규 뿐 아니라 주니치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광판 우측의 광고판을 한 차례 때리는 큼직한 홈런타구를 날렸다.
이병규 역시 프리배팅 막판에 백스크린 좌우쪽으로 뻗는 총알타구를 연신 날리며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요미우리는 지난해 2년 연속으로 B클래스(4~6위)로 떨어지는 전례 없는 부진을 털어내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특히 주니치전에서는 6승16패로 처참하게 무너져 홈 개막전인 이날을 절치부심 속에 기다려 왔다.
물론 팀 슬로건으로 내세운, 정상 탈환과 명예 회복을 의미하는 ‘닷카이(奪回)’의 중심에는 부동의 4번 타자 이승엽이 서 있다. 주니치는 지난해 리그 정상에 올랐으면서도 50년 이상 도달해 보지 못한 일본시리즈 왕좌를 향해 올시즌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니치의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은 타선에 새 바람을 일으킬 ‘키 맨’으로 일찌감치 이병규를 지목한 바 있다. 매 경기 일본 야구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킬 게 분명한 요미우리-주니치전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이(李)의 전쟁’이기에 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첫 맞대결에서는 일본 무대 ‘선배’인 이승엽이 판정승을 거두며 한 수위임을 증명했다. 이승엽은 주니치 좌완 선발 야마모토를 상대로 1회 2루타, 3회 우전안타, 5회 우전 안타 등 4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의 맹타를 휘두른 반면 이병규는 첫 타석인 2회 2루타로 순조로운 출발을 했지만 이후 3타석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4타수 1안타.
시즌 첫 멀티 히트를 기록한 이승엽은 타율을 2할에서 3할5푼7리(14타수 5안타 1홈런 2타점 2득점)까지 끌어 올렸고, 개막 후 4경기 연속 안타행진을 벌인 이병규는 2할5푼(16타수 4안타 2타점)을 그대로 유지했다. 한편 6회 말에는 이승엽이 때려낸 중견수 플라이를 이병규가, 9회 초에는 이병규의 땅볼 타구를 1루수 이승엽이 잡아내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요미우리는 7-2 완승을 거두고 3승1패를 기록, 개막 후 3연승 행진을 마감한 주니치와 리그 공동 1위에 올랐다.
도쿄=양정석 객원기자(일본야구 전문) jsyang061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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