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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의 하이킥 라이프] <4> 정두언의 자기실현욕구형 흥행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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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의 하이킥 라이프] <4> 정두언의 자기실현욕구형 흥행술

입력
2007.04.0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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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12일 아침, 한국일보 사회면 중간머리 5단 기사는 제목이‘정성태 의원 강제귀가-천리길 하루 남기고 서울 경계에서’였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6선 의원 정성태는 8월 31일 광주에서 ‘3선 개헌반대 천리길 헌정수호행진’을 시작해 11일 동안 걸어서 서울에 진입하려다가 정사복 경찰중대에게 저지당하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자택으로 이끌려갔다.

한국일보 시경 캡이던 나는 노량진 경찰서 담당 신우재 기자를 안양과 서울의 경계지점에 급파하여 당국의 통제를 받던 헌정수호행진의 결말을 경쟁지와 다르게 크고 상세하게 실었다.

이때 정성태의 조카벌인 정두언은 나이 열두 살. 그의 아버지가 가까운 친척 형인 정성태 의원의 운전기사를 한 연줄로 일가가 상경하여 삼청동에 살게 되고, 소년 정두언의 마음속에 소리 없이 ‘정치’가 들어가 자리를 잡았음직하다.

정두언은 가정적으로 불우한 편이었다고 여긴다. 그의 어머니는 서대문 모래내 시장에 좌판을 펴서 5남매를 교육시켰다. “아버지는 늘 밖으로 도셨고 수시로 어머니를 패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내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 너무 두렵고 싫어서 자기애(自己愛) 또는 자존심을 들어냈다.” 그의 자기진단이다. 정두언은 성격이 온순한 편이지만, 남들을 잘 웃겼고 지금도 그렇다. 웃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나에게 두루 즐거운 일이다.

그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는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인물, 똘똘하지만 언젠가 일 저지를 것 같은 사람,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날라리 등으로 여러 갈래다. 연극인 김지숙은 정두언을 가리켜 ‘따스하다. 그러나 거침없이’라고 우호적으로 평한다.

●위악어법 디스페니즘

정두언 어법의 특징은 자화상과 관측 대상을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깡그리 ‘투명하게’ 폭로하는 위악어법(디스페미즘)의 표현이다.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정두언의 세 음반인 <추억의 팝송여행> <두 바퀴로 가는 행복> <베스트 앨범>에 관해 언급하자 그는 첫 마디로 “다 표 얻자고 하는 건데요 뭐”하고 위악을 부렸다.

국회의원 황금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때도 그랬다. 그는 항간의 속설인 5대 난제로 김치 없이 라면 먹기, 소금 없이 삶은 계란 먹기, 리모컨 없이 텔레비전 보기, 여자 3명이 모여 아무 얘기 안하기에 이어 가장 어려운 것은 정치인 존경하기라고 꼽았다.

위악어법은 자기애가 강하고 연출욕이 넘치는 인간이 보여주는 표현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건방진 얘긴데 국회의원 같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금배지 달고 다니는 게 기분 나빠 존경 받을 때까지 달지 않는다.”

●세 개의 흥행 연출

정두언(1957년 생)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자기실현 욕망을 세 가지의 무대효과로 표출해왔다.

첫 단계는 자기 행정 전문성을 확보하려고 ‘행정 평론’을 시도한 일이다. 그는 자기가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소위 모범생이었지만, 낭만적 기질이 다분했다”고 말한다.

유신 정권 아래 암울한 대학시절을 보내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정무장관실,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및 비서실 등을 거치며 20년 가까이 행정 공무원으로 일한다.

정두언은 2000년 4ㆍ13 총선에서 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가 2,000여 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고, 2004년 총선에서 17대 초선 의원이 된다. 정두언이 발간한 첫 저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2001년 5월)는 교보문고 5주 연속 베스트셀러로 7쇄를 찍었다.

공무원 생활의 경험을 근거로 총리 등 행정부 고위 관료의 부끄러운 실태를 까발려 비평한 책이지만 행정평론가의 경력은 이 저서 한권으로 끝이 났다. 지난 해 연말에 낸 두 번째 책 <최고의 정당 최악의 정당>은 정치색이 강한 정치 칼럼집이다.

정두언이 자아실현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두 번째 이벤트는 산악자전거 타기이다. 그가 홍은동-무악재-시청 사이를 자전거로 출퇴근 한 것은 대중교통 이용을 강조하던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이다.

그의 세 음반표지는 모두 자전거를 타는 자화상이다. 결국 자전거 타기는 그가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자기과시(셀프 디스플레이) 또는 자기류(自己流)에 몰입하는 심리적 경향을 들어낸다.

●노래!

정두언은 특기가 노래다. 그의 세 번째 연출무대는 미성으로 올드 팝뮤직을 즐겨 부르는 것이다.

“프랑크 시나트라를 능가하는 그의 노래 솜씨를 경험한 사람은 그가 왜 공무원으로 살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 연극인 김지숙의 평이다.

그는 어렸을 때 말을 배우던 시절부터 말보다 노래를 잘했다. <부기우기>가 어릴 적 18번이었다. 경기중학교에서 팝송에 심취하여 고등학교 때까지 무척 많이 불렀고 서울대에 가서는 그룹사운드를 이끌었다.

서울시 부시장 시절 그가 음반을 냈더니 연예인협회 가수 분과위원회에서 가수증을 보냈다. 그렇게 공식 가수가 된 후 대한민국 연예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하여튼 미성의 소유자인 정두언의 생애에 노래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다.

“연예인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분은 많았어도, 국회의원 하다가 연예인이 된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그는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 집은 뼈대 있는 집이 아니라 성대(聲帶) 있는 집’이라고 농담을 한다. 이것이 최근에 사실로 드러났다.

2005년에 광주에서 정율성 국제음악회가 열렸을 때 정율성이 아버지의 가까운 인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광주 태생으로 항일운동에 뛰어들어 중국 공산당의 <연안가> <팔로군행진곡> <인민해방군가> 등 혁명을 고취하는 노래를 작곡해서 영웅이 된 음악가다.

2년 전 가을 정두언은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클릭비’와 합동 공연을 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현역의원이 국회에서 콘서트를 갖는 기록을 세웠다.

작년 연말에는 서울 인사동 화랑에서 ‘그림과 음악이 함께하는 출판기념회’(저서 <최고의 정당 최악의 정당>)를 유별나게 꾸몄다. 식순과 축사가 없이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6시간 동안 기념회를 열어 정두언은 올드 팝송 40여 곡을 끊임없이 불러댔다.

정책 비서관이 정두언과 찻집 한 구석에 마주 앉아 얼굴을 분장해주고 있었다. 정두언은 검정 세단형 승용차를 타지 않고 대중 연예인처럼 스포츠용도의 차량인 하늘색 카니발을 타고 다닌다.

그가 팝송 부르기 이벤트를 할 때 필요한 의상과 소품, 산악자전거 1대와 헬멧 및 유니폼을 항시 싣고 다니는 다목적 승용차다. 신촌에 있는 소극장 산울림 옆 골목에는 팝송을 부를 때 자주 찾는 ‘사운드 워크 스튜디오’가 있다.

■‘기분좋은 QX’가 제공하는 트렌드 ABC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개인의 삶은 일련의 선천적 욕구들로 동기화되어 퍼스낼리티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욕구란 만족을 향해서 잠재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일종의 결핍 상태라고 본다. 인간에게는 5단계 성장욕구 서열이 있는데 그 정점에 ‘가장 정신적인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내면과 외면을 합쳐 관리하는 자기연출, 개성연출은 이 시대의 독특한 풍경이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의 주관대로 행하는 방식, 일정한 전통이나 일반적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행하는 방식은 자기류(自己流) 혹은 자가류(自家流)라는 초현대인의 속성을 보인다.

자기류의 몰입은 어떻게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남에게 인정받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현시적 ‘스타일리스트 되기’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말해 워크홀릭 시대가 아니라 스타일홀릭 시대의 도래를 본다. 전문가로 세간의 인정을 받기 위해 홈페이지를 공들여 제작하거나 출판물을 끊임없이 내는 자저활동(auto-authorizing)의 증가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분좋은 QX 홈페이지 www.givenzoneqx.com

글=안병찬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 ann-b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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