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는. 그런데 이런 문제의 책임을 그들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데에 '리더십의 딜레마'가 있다. 공사 구분을 엄격히 하고 정실주의를 단호하게 물리치면 자신을 위해 충성할 추종자들을 확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 시대에 이르러 '보스 정치'니 '가신 정치'니 하는 게 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김영삼ㆍ김대중의 경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20년 넘게 야권의 '보스'로 군림해온 건 반(反)독재투쟁이라고 하는 특수상황 덕분이었다.
그들의 시대가 갔다는 건 그들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던 상황이 해소됐다는 걸 뜻하는 것이지, 지도자 중심의 정실주의 문화가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 정실주의에 취약한 정치 풍토
대통령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고언을 할 때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386 참모들과 단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해왔던 방식으로 일하게 내버려둬달라"고 말하곤 했다.(조기숙의 <마법에 걸린 나라> )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책임윤리를 생각하면, 사실 노무현의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 있다. 마법에>
이는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느냐 여부를 따지는 편협한 사고 기제로 발전해, 인재 운용의 한계와 더불어 '포용 없는 독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안희정 파문'도 자신을 위해 감옥에 간 사람들에겐 '장관' 아니면 '대북 밀사' 자리라도 줘야 직성이 풀리는 노무현의 자폐적 정실주의가 빚은 결과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자기 세력 구축과 운용을 위해 정실주의의 포로가 되는 현실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민주당 의원 조순형이다.
지난달 21일 민주당이 김대중의 차남 김홍업을 4ㆍ25 재ㆍ보선에 전남 신안ㆍ무안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키로 결정한 건 정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추태였다. 이 추태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데에 한국정치의 비극이 있다. 그래서 조순형의 비판은 값지다.
조순형은 "홍업씨는 실형선고를 받고 사면ㆍ복권된 지 얼마 안 된 처지인데, 스스로 근신하고 자제했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본인이 스스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또 그는 민주당에 대해선 "공당이자 민주 정당이길 포기한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조순형이 옳다. 조순형에겐 다른 정치인들에겐 상례화된 '자기 모순'이 없기에 늘 당당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노무현이 통합신당론을 '지역당 회귀'라고 비판하자, 조순형은 "전남 목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호남 예찬론'을 편 노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를 얘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사실 노무현의 언어 구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게 바로 이 점이다. 늘 옳은 말씀을 많이 하지만, '사돈 남말 하기'가 너무 잦아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
● 남들처럼 자기모순 없는 당당함
그런데 문제는 상황에 따라 말을 달리 하고 끈끈한 정실주의로 자기 사람을 잘 챙기는 정치인만이 '보스'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순형도 그 점을 알고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대선 후보가 되면 다양한 이익집단을 만나야 하고, 때로는 내 원칙이나 소신과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대선 출마) 생각이 없다"고 했다.
리더십의 딜레마다. 정실주의를 최대한 활용해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 노릇을 한, 드라마 '하얀 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 보더라도 조순형이 설 땅이 넓을 것 같지는 않다. 정실주의를 '인간미'로 포장하는 사회에서 엄격한 공사 구분은 기대하기 어렵다. 조순형의 '쓴 소리'가 빛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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