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소년 딥스는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 유치원 교사들은 지능장애와 자폐증세가 있다고 여긴다. 엘리트 과학자와 유능한 의사인 부모는 그를 아이로 대접하는 대신 '과학자와 의사의 부속물'이라는 상황을 강요한다.
자신들의 아이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살 때부터 알파벳을 가르치고, 부유한 환경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쌓아 놓는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_자연, 놀이, 부자ㆍ모자관계 등_에서 차단되어 있다고 느낀다. 갖고 싶은 것들을 몰래 확보한 뒤 스스로 빗장을 만들고, 부모에 대한 상실감을 사람에 대한 적개심과 공격성으로 위장한다.
● 선행학습 광풍은 병적 이상심리
책 <딥스> 는 버지니아 액슬린 교수(미 오하이오 주립대)가 자신을 상실한 아이에게 스스로 자아를 찾도록 도와주는 과정을 옮긴 실화다. 아이가 자신의 생일카드에 "선생님이, 내가,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이라는 말을 적은 것을 보고 교수는 아이가 자아를 확립했음을 확인한다. 딥스>
저능아 취급을 받던 아이는 이후 영재학교에 들어가며 적극적이고 정의감이 충만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딥스> 는 아동의 심리치료를 위한 교과서인 동시에 '잘나고 똑똑한 부모들'의 병적 이상심리를 치유하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딥스>
한국일보가 최근 '선행학습 광풍'이라는 기획을 연재했다. 고등학생들이 대학과정을 미리 학습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중학생들이 특목고에 가기 위해 교과과정을 당겨서 공부하고, 토플ㆍ토익시험을 준비하느라 밤늦게 학원가를 오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이해할 대목이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선행학습이라는 고삐에 이끌려 영어는 물론 국어나 사회과목까지 과외를 받으러 다니고, 유치원에서부터 영어단어 암기를 스파르타식으로 해댄다니 어이가 없다.
딥스라는 소년이 떠오른 것은 액슬린 교수가 자폐성향을 보이던 아이를 자아발견을 통해 건강한 소년으로 변화시킨 것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발랄하고 사회성 좋은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들을 '자아말살'의 틀에 집어넣어 자폐성향을 보이는 소년ㆍ소녀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초등학교 아이가 친구나 부모와 격리돼 학원에서 중학생들 틈에 혼자 끼어 이어폰으로 북핵문제를 영어단어로 외우고, 유치원생들이 전자수첩을 들고 기계음을 흉내내는 모습이 자폐성향을 보인 어린 딥스와 너무나 닮았다.
게다가 이들의 부모 대부분이 딥스의 부모처럼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사회가 '딥스 치료하기'는커녕 '딥스 만들기' 광풍을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액슬리 교수는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통설마저 뒤집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자아를 발견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러한 부모의 정신건강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능력을 강요하면 자아말살 위험
광풍은 서점에 가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치원 때부터 쥐잡듯이 잡아야 제대로 영어를 익힐 수 있다는 책들이 유아교육 서가에 빼곡이 꽂혀 있다. 욕이나 꾸중을 영어로 하면 그 단어가 아이들이 머리에 꼭 박히니 그렇게 해보라고 권하는 것들까지 있으니 가관이다. "아이에게 능력을 증명하라고 강요했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남편이나 저에 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들보다 나은 아이가 되게 해주고 싶었어요." 딥스 어머니의 회한은 그대로 우리 부모들의 고백이어야 한다.
사회부 기자 시절 천재 어린이의 사연을 사회면 톱기사로 썼다. 네살짜리 아이가 한자가 섞인 신문을 줄줄 읽는다는 내용이었다. 새로 나온 신문을 들고 가서 확인했으니 '천재'였음이 분명했다. 아이는 무표정하게 판독기처럼 신문을 읽고, 옆에서 부모가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진도 실렸다.
기자까지 달려와 아이의 재능을 강요하고 능력을 검증하자고 나섰던 게다. 지금쯤 청년이 되었을 텐데 어찌 지내는지. 혹시 또 한 명의 딥스를 만드는 데 동참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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