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내용 가운데 우리 주권을 침해하고 국내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독소 조항’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타결 내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의도하지 않았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학계 인사와 통상 전문가들은 3일 한미 FTA 타결 내용 중 가장 심각한 독소 조항으로 ‘투자자ㆍ국가제소권’을 꼽았다. 이 제도를 적용하면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의 정책으로 손해를 봤다며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투자자의 재산권과 기대이익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어 우리 정부의 주권 행사마저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 협상단은 부동산ㆍ조세 정책 등을 제소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부동산의 경우 가격안정 정책만 포함되고 도시계획, 그린벨트, 투기제한지역 지정 등은 빠졌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미국 기업인이 우리 정부의 환경규제 등 다른 공공부문에 대한 제소권을 남용할 여지가 있으며, 위헌 소지마저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환경, 보건, 안전 등 공공복지를 위한 정부 규제나 정책은 소송 대상이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
시장 개방의 수위가 정해지면 이를 더 낮은 수준으로 되돌릴 수 없도록 한 ‘역진 방지 제도’, 일명 ‘래쳇(Ratchetㆍ톱니바퀴가 거꾸로 도는 것을 막는 장치)’조항도 논란거리다. 스크린쿼터, 방송이 피해를 입을 분야로 거론되는데, 타결 FTA 협정 아래서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려 해도 미국에 대해서는 개방 조치를 철회할 수 없다.
미리 정한 분야 이외의 모든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서비스 시장 개방도 문제다. 이대로라면 향후 FTA 시행 과정에서 나타날 모든 신종 서비스산업은 자동적으로 미국에 개방할 수 밖에 없다. 또 협정 실행을 통해 ‘기대했던 이익’이 훼손됐을 경우 분쟁을 제기할 수 있는 ‘비위반 제소’ 대상에 지적재산권이 포함된 것도 부작용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기대했던 이익’이라는 모호한 정의 때문에 정부의 국산 소프트웨어 장려 등 정당한 정책마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향후 다른 국가와 체결할 FTA에서 새로 추가되는 내용의 경우, 미국에 자동적으로 최혜국대우(MFN)를 해주기로 한 점도 우리 정부의 통상외교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비위반제소, 투자자ㆍ국가제소권 등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를 가감 없이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며 “국회 비준 과정에서 이 같은 조항들의 수용 여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ㆍ국가제소권(Investor-State ClaimsㆍISD)
외국에 투자했다가 현지 정부의 부당한 정책으로 피해를 볼 경우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
장학만기자 local@hk.co.kr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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