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계가 무대다] <14> 전진중공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계가 무대다] <14> 전진중공업

입력
2007.04.03 01:05
0 0

알만한 사람들은 다 비웃었다. “돈 좀 벌더니 미쳤다.”“무모한 짓이다…” 솔직히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답이 안 나왔다. ‘30년이나 앞서간 외국 기술을 무슨 수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설사 비슷하게 만든들 누가 사주기는 하겠나.’ 십중팔구 지는 싸움이었다.

#1991년 어느날. 안의환(52) 전진중공업㈜ 회장은 다들 말리는 길을 홀로 나섰다. 전진산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콘크리트 펌프카(CPC) 제조의 꿈을 담았다. 당시 CPC 제조는 독일 등 손꼽히는 기계 선진국만 가능했다. 우리는 CPC 기술의 핵심인 상부장치를 트럭에 얹혀 파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굳이 공들여 만들 필요도 없었다. 판매차익과 얼추 흉내낸 부품 제조만 해도 남는 장사였다.

#현재. 세계 80개국의 건설현장에는 어김없이 50m가 넘는 기다란 붉은 색 파이프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콘크리트를 촘촘한 벽 사이에 집어넣고 있다. 허리에 ‘JUNJIN(전진)’ 로고를 단 CPC다. 안 회장은 수입에만 의존했던 CPC를 국산화하고 세계시장으로 역수출하며 세계 3위 업체로 우뚝 섰다. 그는 ‘상식을 벗었더니 (기술개발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기름밥 먹던 농군의 아들이 세계를 누비다

안 회장은 뚝심이 넘친다. 한 달에 절반 이상은 업무 때문에 해외에 나가있지만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출국 시간을 3시간 앞둔 인터뷰 내내 여유로웠다. 조급하지 않은 넉넉함과 타고난 건강이 사업성공의 원천인 듯 했다.

그는 전남 보성의 녹차 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손바닥만한 땅을 짓던 집안의 5남 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시골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때 무작정 상경해 주경야독을 했다. 그는 “판검사가 돼야 성공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시골 촌놈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입에 풀칠하느라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성년이 되자 중고 중장비를 정비하고 부품을 만드는 아르바이트가 그대로 직업이 됐다. 그는 “고시공부를 하다가 유압의 원리 등 기계의 무한한 힘에 끌렸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한 것 밖엔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가 어느날 고개를 갸우뚱했다. 80년대 말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에 따라 CPC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는데 값비싼 수입 완제품만 고집할 뿐 누구 하나 국산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CPC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였는데도 한국에선 생산을 못 하는 게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사실 CPC는 엄청난 길이(30~63m)의 콘크리트 수송관을 흔들림 없이 지탱해주는 기술이 관건이라 제작이 쉽지는 않았다.

당시 기계에 빠져있던 그는 일찌감치 CPC 부품을 자체 제작하는 일에 몰두했다. CPC의 수입가격이 너무 높아서 부품만 만들어 팔아도 먹고 살만 했다. 새벽 5시면 출근해 CPC를 뜯어보고 만져보고 자로 재보면서 수송관, 개폐기 등 몇몇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20만원짜리 부품을 자체 개발해 5만원에 팔았다. 그는 “수입업자의 횡포가 심했던 탓에 품질은 조금 떨어지지만 우리가 만든 부품 가격이 워낙 싸서 잘 팔렸다”고 말했다.

부품개발에 대한 흥미는 차츰 CPC 완제품 제작이라는 원대한 꿈으로 바뀌었다. 관련업계 사람들은 코방귀를 뀌었지만 그는 괘념치 않고 91년 CPC 제조회사를 차렸다. 하루도 한가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기계더미에 묻혀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거듭했다. 생각은 넘쳤지만 기술은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벤치마킹이 필요했다. 93년 CPC 1위 업체인 독일 푸츠마이스타사의 제품을 수입하면서 기술협약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평생 기름밥을 먹었던 그가 품질과 기술력으로 세계를 누빌 날개를 달게 된 셈이다.

▲‘제발 한대만 사주세요’

94년 3월10일 드디어 자체 기술로 CPC 장비 1호(43m)를 만들었다. 기쁨이 오죽했으면 이날을 전진중공업 창립일(원래는 2월5일)로 다시 선언했을 정도다. 안 회장은 회사경영 기술개발 공장관리 1인3역을 감당했다. 그는 “국내엔 아는 사람도 없고 장비에 대한 인식도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당시 연구소장을 맡았던 조재규 전무이사의 공이 컸다”고 했다.

수입품보다 30% 쌌지만 사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부품 공급으로 신뢰를 쌓았던 김영중 전 현대건설 상무가 선뜻 장비 1호(4억8,000만원)를 사줬다. 안 회장은 “김 전 상무가 없었다면 아마 포기했을지도 모를 사업”이라면서 “꼭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전했다.

이후 한 달에 한 대꼴로 팔려나가던 전진의 CPC는 96년 해외시장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한파로 온 나라가 휘청거렸지만 전진중공업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결국 98년 CPC의 100% 국산화에 성공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국내 1위, 세계 3위의 점유율을 놓치지 않고 있다.

“한 달에 CPC 10대만 팔아도 죽어 여한이 없겠다”던 안 회장은 이제 매달 50대 이상을 팔고 있다. 2001년부터 최근까지 판매한 CPC는 1,343대다. 미국 캐나다 남미 유럽 중국을 넘어 중동과 독립국가연합(CIS)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그의 꿈은 매달 100대를 팔아 전세계가 12시간 안에 ‘전진’이라는 이름으로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해외로 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꿈이 커진다. “세계 1위를 못하면 발 뻗고 잠을 못 잘 것 같아요.” 지금도 그의 수첩에는 해외출장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전진중공업, 수출만 800억원

전진중공업㈜은 콘크리트 펌프카(CPC) 시장의 글로벌 리더다.

시작은 CPC 수입 및 부품 제작이었지만 1994년 국산화 성공해 96년 역수출을 시작한 이후 2002년부터 국내 1위, 세계 3위의 점유율을 이어가고 있다. 전진은 지금까지 10년 동안 중장비 기종을 다양화하면서 지난해 수출만으로 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80%가 수출이고, 수출 국가는 80곳을 넘어섰다.

전진의 성공요인은 공격적인 세계시장 겨냥과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다. 독자모델을 개발하고 유럽 및 국내 안전마크 인증을 획득하면서 활로를 뚫었다. 수요는 많지만 규제가 까다로운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제2 창업의 기치를 내걸고 텐진(天津)에 공장을 세웠다. 벨기에와 중동의 중심인 아부다비에도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국내 최초로 2001년 57m급(57m까지 콘크리트 타설 가능) 초대형 CPC를 개발해 호평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두번째로 세계 최대급인 63m급을 만들어 유럽에 수출했다.

수출시장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 해외법인을 설립해 캐나다 스페인 동남아 남미 호주 등지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애프터서비스 부서를 전문화해 해외 고객의 불편함을 더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5년 ‘3000만불 수출 탑’, 2006년 ‘5,000만불 수출 탑’을 수상했다.

해외시장 개척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바이어들은 “준진(JUNJIN)이 뭐 하는 곳이냐”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수년간 해외 바이어들을 모셔와 생산공장을 보여주며 설득작업을 벌여야 했다. 한두 대 팔려나가면서 기술력을 인정 받더니 입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전진 관계자는 “품질향상과 고객만족의 경영철학이 해외시장을 감동시켰다”고 자부했다.

전진은 이제 CPC뿐 아니라 모든 중장비를 포함한 종합중장비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05년 특수장비 업계의 대표주자인 ㈜수산특장(현 전진CSM)을 인수하고, 충북 금왕에 제2공장을 증설 중이다.

지난달 중장비 세계 매출 2위인 일본 고마츠의 국내 대리점을 열어 건설과 관련된 중장비는 모두 다 갖췄다. 유전이 많은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전진의 세계 1위를 향한 전진은 이제 시간만 남았을 뿐이다.

고찬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