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한미 FTA를 통해 ‘한반도 역외가공 지역위원회’를 설치키로 합의한 것은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록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한국산 원산지 인정 합의가 불발로 끝났지만 우리 측은 ‘한반도 역외가공 지역위원회’라는 징검다리 구축에 성공함으로써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는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OPZ)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만일 개성공단이 OPZ로 지정되면 한국산 원자재가 일정 수준 이상 투입된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 제품으로 인정돼 대미 수출의 길이 열리게 된다.
한국 측은 앞으로 미국 측과 향후‘빌트인(built- in) 어젠다’방식으로 개성공단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게 된다. 빌트인 방식은 협상 시한 내 타결점을 찾기 힘든 의제에 대해 협정 당사국이 최종 협정문에 추후 논의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과거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당시 미국과 멕시코가 금융 분야 협상에서 이 방식을 활용해 협정을 타결한 적이 있다.
문제는 한미 FTA 부속합의에 붙어 있는 OPZ 지정 조건이다.‘조건’ 내지‘기준’의 내용은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 상황과 근로기준, OPZ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사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모호할 수 있어 당장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OPZ 지정 조건의 핵심 관건은 역시 비핵화 진전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적성국 교역법에 따라 미국이 북한산 제품을 수입할 때는 재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관세도 정상 교역국에 비해 2~10배에 달한다. 사실상 북한산 제품의 대미 수출은 봉쇄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진전을 이루고,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배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까지 푼다면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싱가포르, 이스라엘과의 FTA에서 역외가공 지역을 인정한 적이 있다. 게다가 한국측은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아세안(ASEAN)과의 FTA에서 개성공단 제품에 대해 특혜 관세를 인정 받았다. 따라서 당장은 개성공단 제품이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기는 어렵다 해도 장기적으로 6자 회담이나 북미 관계가 개선된다면 ‘한반도 역외가공 지역위원회’설치 및 역외가공지역 지정은 개성공단 제품의 미국 시장 진출에 날개를 달아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FTA 용어 설명
◆ 역외가공(OPㆍOutward Processing)
원재료 및 부품을 수출해 역외에서 가공한 후 재수입한 최종 물품에 대해 원산지 지위를 인정하는 제도. 이 같은 역외가공을 인정 받는 지역이 역외가공지역이다.
◆ 양허와 개방
개방은 시장을 여는 것, 양허(commitment)는 앞으로 개방을 취소하지 않겠다는 국가간 약속이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개방된 상태인데 '양허'한다면 현 개방 수준에서 더 후퇴할 수 없다. '양허관세'(tariff concession)는 관세를 일정 세율 이상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수입품 급증으로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될 때 수입을 일시 금지하는 것이다. 금융 분야의 경우, 급격한 외국자본 이탈 현상이 발생할 때 일시적으로 대외송금을 정지시킬 수 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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