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으로 기록될 것이냐, 오욕으로 남을 것이냐.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 1차 협상에서 30일 서울 장관급 막판 협상에 이르기까지 14개월 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측 협상단은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목표와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 협상현실 사이에서 피 말리는 격전을 치렀다. 우여곡절 끝에 대단원의 막은 내려졌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협상결과가 몰고 올 파장 여하에 따라 협상 주역들은 한국경제의 일등 공신이 될 수도, 국익을 팔아먹은 매국노로 비난받을 수도 있다.
막판 장관급 끝장협상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을 출범시킨 산파이자, 사령탑으로서 협상을 진두지휘 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국익과 직결돼 중압감이 크다. 피가 마르고 입에선 단내가 난다. 이를 이겨내고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엘리트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은 협상의 순간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5년 로버트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상대로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에 나서도록 처음 권유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해 협상개시 승인을 받아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한미 FTA는 김현종의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 1995년 외교부 통상자문 변호사를 맡으며 정부와 인연을 맺었고 세계무역기구(WTO) 수석 고문 변호사 등을 지내다가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노 대통령의 눈에 띄어 발탁됐다. 그와 함께 일해 본 외교관들은 그를 명확한 논리와 두둑한 배짱, 해박한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치밀한 분석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한다.
8차 협상까지 실무협상을 이끈 김종훈 수석대표. 일본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강인한 인상의 김 대표는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를 상대로 협정의 골격을 만든 주역이다. 2005년 부산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고위관리 의장을 맡는 등 외교부 내 대표적 통상전문가다. 강단 있고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커틀러 미 대표와 함께 1년 넘게 서울과 워싱턴 등을 오가며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상품무역 분과장을 맡은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은 이번 협상의 전략을 짜고 내부조율과 대외관계를 총괄했다. 98년 한미투자협정(BIT) 타결의 주역으로, 쇠고기 협상과 유럽연합(EU)과의 지적재산권 협상 등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이번 협상에서도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최대 난제였던 농업 협상 책임자인 배종하(농림부 국제농업국장) 농업 분과장은 농림부 내 대표적인 국제통으로, 이번 협상에서 미국의 예외 없는 시장개방 공세를 온몸으로 맞섰으나 역부족을 실감해야 했다. 협상 부담이 너무 컸던 탓인지 막판에는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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