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전공자들의 문학 외도의 산물인가? 영화화를 위해 너무 일찍 태어난 장르인가?
어린시절엔 청소년용 문고판으로, 성인이 되서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공상과학(SF)에 한번쯤 접해보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다. SF가 한국에 발을 디딘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된다. 이를 기념한 전시회 이 3일~5월 9일 서울 동교동 문지문화원 ‘사이’(02_323_4207)에서 열린다. 4월 창간될 SF 월간지 <판타스틱> 과 ‘사이’가 공동주최한다. 지난 100년간 SF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판타스틱>
한국의 SF
전시회에는 국내·외 작품 140점이 일부 실물과 고색창연한 표지 포스터로 나온다. 최초의 한글 SF는 1907년 쥘 베른의 <해저 2만리그> 를 번역, 일본 도쿄(東京)의 한인 유학생 회보였던 <태극학보> 에 일부 연재된 <해저여행기담> 으로 추정된다. 이어 1908년 쥘 베른의 <인도 왕녀의 5억 프랑(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egum)> 을 번안한 이해조의 <철세계> 가 나왔다. 최초의 창작 SF는 김동인의 (1929년)로 꼽힌다. 잡지 <신소설> 에 발표된 단편으로, 배설물로 대체식량을 만드는 과학자 이야기다. 신소설> 철세계> 인도> 해저여행기담> 태극학보> 해저>
SF가 국내 문학계를 주름잡았던 시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이디어회관 청소년sf문고> 시리즈가 출간된 1970~80년대가 전성기에 가까웠다. 한낙원의 <금성탐험대> <잃어버린 소년> 등은 10~20년간 스테디셀러였다. 다만 국내에서는 비주류 장르문학이라는 인식이 강해 세계적 작품들이 청소년판으로만 소개되고, 주류 작가 중 SF를 쓰는 사람은 <역사 속의 나그네> 의 복거일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역사> 잃어버린> 금성탐험대> 아이디어회관>
과학과 SF의 대화
SF는 첨단 과학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다시 과학의 발전을 자극한다.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 (1978)에 나오는 우주 엘리베이터나 <태양에서 부는 바람> (1963)에 등장하는 태양풍 우주선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주제 중 하나다. 우주 엘리베이터는 1920년대 처음 연구논문이 나온 이래 잊혀졌지만 철보다 훨씬 강도가 센 탄소나노튜브의 개발로 가능성이 새롭게 부각됐다. 태양풍 우주선은 저비용 탐사선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검토되고 있다. 태양에서> 낙원의>
로보틱스와 로봇 SF의 대화는 가정부 로봇, 애완 로봇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로봇이라는 용어 자체가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펙의 작품 (1921)에서 나왔고, 아이작 아시모프가 <아이 로봇> (1950)에서 밝힌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빠트리거나 방치하지 않는다’ 등 로봇공학의 3원칙은 이제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필립 딕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는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펼쳐 볼 수 있는 다양한 디스플레이들이 등장하는데 관련 연구자에게는 개발 비전을 제시한 교본과도 같다. 마이너리티> 아이>
SF에는 미래가 있다
SF 작가들의 예지력은 과학자와 사회학자를 놀라게 한다. 부정할 수 없는 SF의 매력이다. SF라는 장르를 개척한 휴고 건스백의 <랄프 124c 41+> (1911)에는 화상통신, 전송신문, 태양전지, 반중력, 사체의 냉동보존 등 현실화했거나 연구중인 과학기술의 개념이 쏟아져 나온다. 랄프>
러시아의 로켓 연구자인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는 달 여행 작품의 선구인 <달세계 도착!> (1916)에서 2017년 액체연료 로켓으로 달에 근접하는 타원 궤도에 진입, 착륙선을 통해 달에 안착하는 광경을 묘사했다. 진지한 로켓 이야기는 학계에서 매장당했던 때였다. 그러나 실제 달 착륙은 그의 예상보다 앞당겨졌다. 달세계>
SF는 보다 넓은 시야를 제공해준다.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중력이 지구보다 훨씬 큰 세상에선 수십㎝에 불과한 턱이 위험천만한 절벽이 되고(할 클레멘트 <중력의 임무) 인간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거대한 질량의 중성자별 생명체에게는 초광속 우주선을 개발할만한 될 수 있는(로버트 포워드 <용의 알> ) 등이 바로 그런 세상이다. 중력의>
미래와 다른 세상을 향한 열망은 곧 인류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현대 문명의 발전은 과학기술뿐 아니라 SF의 성과이기도 하다. <스타십 트루퍼스> (1959)의 원작자인 로버트 하인라인의 <주브나일> 시리즈는 나중에 NASA에서 일하게 될 과학자를 수없이 배출했고, 그들은 화성에 ‘하인라인 분화구’라는 지명을 헌정했다. 주브나일> 스타십>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이렇게 말한다. “SF는 미래사회학이다. 어린이들은 클라크, 하인라인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SF는 ‘미래의 나’를 위해 읽혀져야만 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도움말 박상준 <판타스틱> 편집장 판타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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