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의도적인 목적으로 정치적 이념과 연결되면 그 생명력은 짧다. 지난 세기에 있어서 옛 소련이 그러했다.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기치 아래 탄생한 작품 중 살아남은 것이 몇 개나 되던가. 물론 예외는 있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발레 <스파르타쿠스> 다. 스파르타쿠스>
스파르타쿠스는 고대 로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승승장구한 노예 검투사였으나, 전열을 정비한 크라수스의 로마 군단에 패한 비극적 영웅이다. 칼 마르크스가 그를 역사적인 혁명 지도자로 재평가했고 당연히 소련 무용계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된다. 매혹적인 선율과 장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무장한 아람 하차투리안의 음악을 바탕으로 1956년 이래 다양한 안무가 시도되었지만 역시 <스파르타쿠스> 의 고전은 1968년 볼쇼이 발레를 위한 그리가로비치의 안무다. 스파르타쿠스>
볼쇼이는 크레믈린의 직접적인 관리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가로비치의 작업 또한 당국의 통제를 받았다. 그런데도 그리가로비치는 이런 한계를 극복해 버렸다. 그 비결은 탁월한 형식미에 있다. 크라수스의 애첩으로 에기나라는 인물을 새롭게 창조하자 주인공이 남녀 각 2명으로 확대되면서 로마군 대 반란군, 남 대 남, 여 대 여의 대립구도가 완벽해졌다. 또 장대한 군무로 당국을 만족시키는 한편, 장면마다 모놀로그라는 대조적 장치로 주인공들의 고뇌와 꿈을 표현했다. 덕분에 주인공들의 내면이 정치적 이념을 압도해 버렸다. 뿐만 아니다. 스파르타쿠스가 로마 군대의 창에 들어올려져 죽는 장면은 십자가 순교를 연상시키며 그 장례는 피에타의 종교적 분위기로 마무리된다. 기독교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였음에도 혁명 영웅의 죽음을 너무나 장엄하게 표현했기에 통과된 것이다. 이처럼 <스파르타쿠스> 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극복한 휴먼 드라마다. 스파르타쿠스>
국립 발레단은 2001년 8월에 아시아 최초로 <스파르타쿠스> 를 초연했다. 누구나 무모한 도전이라고 우려했지만 모든 단원들이 뭔가 보여주겠다며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하더니 우리나라 공연 역사에 남을 기적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제 5년 8개월만의 재공연(4월 20~25일)이 다가오고 있다. 보기 드문 걸작이지만, 작품이 요구하는 테크닉과 체력, 표현의 수준은 너무나 높다. 이번 공연도 얼마나 비장한 각오로 발레단의 분위기를 고양시키는가에 성공 여부가 달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에 관객의 성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스파르타쿠스>
/무지크 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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