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순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순교

입력
2007.04.03 01:05
0 0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는 요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순교자'가 속출한다. 가슴에 폭탄을 두르고 침략자인 미군이나 이스라엘군에게 돌진해 죽는 경우라면 혹시 모르겠거니와, 민간인들이 모인 모스크나 버스 안에서 자폭하는 행위에 대해서까지도 그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참 이해가 안 간다.

그래도 중동의 특수성과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커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드러낸 눈동자에는 헌신과 증오가 동시에 번득인다.

■ 순교란 따라 죽을 殉자와 가르칠 敎자가 합쳐진 말이니 가르침을 따라 죽는다, 곧 어떤 종교적 교리나 대의, 신념, 숭고한 목적 등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의 martyr(마터)도 어원은 좀 다르지만 대개 우리말의 순교(자)와 같은 뜻이다.

순교라는 단어는 종교적 배경을 연상시키지만 제대로 된 종교치고 대놓고 순교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중동의 이슬람 전사들이 걸핏하면 순교 운운하지만 마호메트조차 '자살하는 사람은 천국의 냄새조차 맡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순교를 운위할 수밖에 없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다. 인간의 정당한 요구를 죽음으로 억압하려는 세력이 버젓이 힘을 쓰는 사회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요즘 순교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자못 많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요구하는 종교단체 관련 일부 인사들은 습관처럼 "순교를 각오하고 사학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거기에 삭발까지 하고 시커먼 양복을 걸쳤으니 사랑을 말하는 종교인 같은 느낌이 싹 가신다. 사학법은 보기에 따라 공익을 위해 학교법인의 자유를 많이 제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순교를 각오하고 싸워야 할 수준은 아니다.

■ 그렇게 '오버'할 게 아니라 그냥 민주ㆍ법치주의에 입각해 치열한 논전과 이해 다툼을 벌여 다수결로 결정할 사항이다. 정치인들도 순교라는 말을 즐기는 것 같다. 압권은 역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탈당하면서 "한나라당을 위해 순교하기보다는 국민을 위한 순교를 선택하겠다"고 한 발언이다.

영어의 martyr는 종종 '자신이 엄청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엄살을 떪으로써 타인의 관심이나 동정을 유발하려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표현으로 쓰인다. 이런 경우가 꼭 그런 것 같다. 순교 운운하며 비장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습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겠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