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주요 은행장들의 설전(舌戰)이 벌어졌다. 매월 되풀이되는 각 은행 월례조회 자리였지만, 이날은 의미가 달랐다. 박해춘 우리은행장 취임, 강권석 기업은행장 연임, 신한금융지주의 LG카드 편입 완료 등 각 은행들이 전열을 정비한 직후 열린 첫 월례조회였다.
연초부터 은행권 영업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미묘한 신경전, 국민은행의 리딩뱅크 수성 전략 등이 여실히 드러나며 향후 본격화할 격전을 예고했다.
통합 신한은행 출범 1주년을 맞은 신상훈 행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우리가 통합에 수반된 내부 정비에 치중하는 사이, 영업에 집중해온 타행들의 질주가 예사롭지 않았다"며 "압도적인 경쟁력을 지닌 자만이 살아 남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금융시장에서 이기는 경영으로 1등 신한은행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신 행장의 기념사는 최근 박해춘 우리은행장의 취임 기자간담회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박 행장은 "시장상황을 잘못 판단해 LG카드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신한지주에 뺏기고 말았지만 1등 카드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며 "중점 업무가 다른 국민은행보다 신한은행을 경쟁사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 행장과 박 행장의 주고받기 식 발언은 최근 두 은행이 주도하고 있는 규모 경쟁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우리은행이 자산 확대 경쟁을 주도했다면, 올해는 신한은행이 급속히 자산을 늘려가는 양상이다.
신한은행은 3월 한달 간 2조원 가량의 원화 대출을 늘리는 등 작년 말 89조6,000억원에 불과했던 원화 대출을 92조6,000억원까지 끌어 올렸다. 우리은행도 이에 뒤질세라 올들어 주춤했던 영업력을 회복하며 국민은행(136조여원)에 이어 두 번째로 원화 대출 100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김연아 이승엽 등 글로벌 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며 '1등을 넘어' 전략을 펴고 있는 국민은행의 강정원 행장은 애써 국내 1위 경쟁을 피했다. 굳이 2위권 은행 경쟁에 휘말려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계산인 셈이다.
강 행장은 최근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국민은행의 장기신용등급을 국가 등급과 동일한 A로 상향 조정한 것을 언급, "국민은행이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인정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지를 느낄 만하다"고 자평했다.
강 행장은 특히 "지난달 거래 수수료 체제 개편처럼 국민은행이 항상 금융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은행임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밝혀 규모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리딩 뱅크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향후 우리 은행산업에 3개, 많아야 4개의 메이저 은행만이 살아 남는다고 하면, 지금 몇 장의 티켓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신 부문에서의 열세 등 여전히 준비가 매우 부족하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며 직원들을 채찍질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은 "전담 조직 신설 등을 통해 중소기업 대출과 SOHO(소규모자영업) 대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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