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오르면 웃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져도 그렇다. 도대체 집값은 올라야 하나, 떨어져야 하나. 평생동안 ‘정의’를 연구했던 20세기 최고의 사회철학자인 미국의 존 롤스(1921~2002)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해 냈다.
집값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주택소유 사실을 모르게 한 채 집값을 정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평생 벌어야 집 한채 마련할 수 없는 집단에 속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값을 공평하게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이 잘라 놓은 케이크를 맨 나중에 가져가게 하면 똑같이 자를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이게 롤스가 사회적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개념이다. 자신의 재능, 지위, 가치관, 재산, 거주지 등 특수한 사정을 모르는 상황, 즉 원초적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이고 선(善)에 대한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틀에서 볼 때 서울 25개 자치구의 재산세 수입 가운데 각각 50%를 걷어 각 구에 균등하게 분배하겠다는 정책은 타당하다. 대한민국 부유층이 몰려있는 강남 3구와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양극화의 길로 접어든 지 오래다. 집값 인상률은 물론, 1인당 교육비 지원, 기반시설투자 등은 이제 같은 서울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
강남3구는 주민들이 내는 세금 가운데 90% 이상을 국세와 시세로 내고, 나머지 10%조차도 자기지역에 쓸 수 없다면 무슨 지방자치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현재 재정자립도만 놓고 보면 지방자치를 할 수 있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또 오늘의 강남은 1970년대 정부의 각종 투자와 특혜를 통해 이뤄진 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정부와 서울시의 분배정책에 따라야 한다. 더욱이 공동세 안은 강남주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해온 한나라당이 내놓은 것이고, 같은 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 아닌가. 강남 주민들은 "과거에 강북의 세금으로 강남을 개발했듯이 이제는 강남의 세금으로 강북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강남 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 광역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시가 2001년 1,100억원을 들여 시설을 완공해놓고도 강남 주민들이 다른 지역 쓰레기 처리를 거부함으로써 25%만 가동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다.
서울시가 소각장 공동 활용시 강남에 연간 61억원을 특별지원 하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지원액을 늘려달라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지난 12월부터 우여곡절 끝에 공동사용되고 있는 양천 시설은 규모가 강남 소각장과 비슷하지만 주민 지원금은 15억원에 불과하다.
정의는 사회제도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도 사회적 정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역이기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롤스의 원칙은 빈익빈 부익부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
하지만 정의론의 최대 맹점은 기득권자일수록 무지의 베일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기초질서 잘 지켜서 깨끗한 강남구보다는 베풀고 희생하는 자세로 존경받는 강남구가 더 기다려진다.
최진환 사회부차장대우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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