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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시대] <2> 산업지형도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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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시대] <2> 산업지형도가 바뀐다

입력
2007.04.0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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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자동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두 개의 선물을 얻었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가 철폐되거나 점진적으로 낮아지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미국 주장을 받아들여 차량에 대한 세금을 배기량 기준 현 5단계에서 3단계로 완화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고급차 분야에서 급속히 국내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독일과 일본 차량은 세금 측면에서 불리해져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현대차의 분석이다.

#2. 국책연구원의 한 박사급 연구원은 최근 미국 투자기관으로부터 불쾌한 제의를 받고 즉석에서 거절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위기에 빠질 업종 중에서 쓸만한 한국 기업의 리스트를 추려달라’는 제의였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떼돈을 번 미국 투자자본이 이번에도 FTA의 충격으로 흔들릴 한국의 우량 기업을 헐값에 매수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10년 전 외환 위기와 맞먹는 수준의 파장을 한국 경제에 가져올 한미 FTA가 타결됐다. 10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한미 FTA 타결이 몰고 올 변화는 한국 제조업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의 힘을 지녔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미 FTA 타결에 따라 국내 제조업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FTA가 발효되는 첫 해 우리나라 수출은 54억 달러가 증가하는 반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96억 달러나 늘어날 전망이다. 수입 증가 중 상당수는 쇠고기 등 농산물이겠지만 기계장비, 공작기계, 종이ㆍ인쇄, 기타 광물의 수입도 크게 늘어난다는 게 두 연구소의 분석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 제조업에서의 최대 피해자다. 기타 운송장비를 제외할 경우 대부분 영세한 중소기업 체제로 운영돼온 이들 업종은 세계 최강의 경쟁자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 1970년대 세계 최강이던 한국 신발산업이 몰락했듯, 이들 업종의 상당수 기업은 문을 닫게 되고 몇몇 살아남은 기업도 미국 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고용창출 효과가 더 크고, 한국 제조업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수출이 대폭 늘어나는 등 한국경제에 엄청난 호재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PDP와 LCD 등 전자, 섬유ㆍ의복, 가죽, 목재가 가장 많은 수혜를 볼 업종으로 꼽히고 있다. 철강과 석유ㆍ석탄, 전자, 조립금속 분야 등 국내 업체가 상대적으로 미국 업체와 비슷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는 미미한 수준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부 규정에 대한 조율 작업이 남아 있는 개성공단 원산지 규정과 관련, 한국측 주장이 대거 받아들여질 경우에는 남북 경협에도 중요한 전기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 FTA가 발효되면 제조업 전반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게 된다.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된 반면, 미국은 한국 경제를 앞마당 수준으로 다룰 수 있게 된 셈이다.

미국의 강화된 영향력은 60년대 한국이 압축성장을 시작한 이후 40년 넘게 지속된 ‘대일 경제 의존’ 구조를 근본부터 흔들 것으로 보인다. 또 80년대 말 중국의 개혁ㆍ개방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온 ‘중국 < 한국 < 일본’의 먹이사슬 구조로 상징되는 동북아 3국 분업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한다.

KIET에 따르면 미국 부품ㆍ소재에 대한 관세(평균 8%)가 철폐될 경우, 그 동안 일본에 편중됐던 주요 핵심 부품ㆍ소재의 수입선이 미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쟁력을 100으로 했을 경우 품질(101.3)을 제외한 기술(99.7), 가격(94.9) 등 일본의 전반적 경쟁력(98.5)은 미국에 뒤지기 때문이다.

KIET 정만태 박사는 “핵심 부품소재 분야에서의 대일 의존에서 탈피하는 한편, 관련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국내 투자를 유치할 경우 2005년 1,237억 달러이던 부품ㆍ소재 분야 수출규모가 2015년에는 4,300억 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선진국 대비 84% 수준이던 기술력도 2015년에는 90%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생산 설비는 한국에 있지만 경영권은 미국계 자본이 쥐고 있는 ‘코리안 메이저리거’ 기업도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기업의 경우 FTA가 체결된 국가는 ‘투자보장이 완벽하게 이뤄진다’고 판단, 현지 투자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주의 경우 2004년 미국과 FTA를 체결했는데, 첫 해부터 미국계 자본의 대 호주 투자가 512.4%나 증가했다. 또 KIET가 한미 FTA 체결이 임박한 시점에서 국내 투자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국계 기업 대부분이 한국 투자에 대한 신뢰성과 안정성 문제가 해소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 경우에?대부분 자동차 부품 등 몇몇 유망 업종에 몰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규모나 기술력에서 떨어지는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신 미국에 철저히 예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미국의 투기성 벤처캐피털이 FTA 초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중소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을 시도할 경우, ‘실익 없는 개방’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FTA가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될 것인지, 독배가 될 것인지 여부는 향후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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