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양 지음 / 샘터 발행ㆍ328쪽ㆍ1만5,000원
연예기획사나 방송국 앞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잠시라도 보기 위해서다. “한참 공부할 나이에 뭐하는 짓이냐”며 혀를 차는 어른도 있겠지만, 조선 시대 서생들도 그들의 우상을 찾아 거리를 서성댔다.
조선 시대 십이가사의 하나인 <춘면곡> 은 선비가 따뜻한 봄날에 기생들에게 둘러싸여 놀고 싶어 하는 심정을 읊은 노래다. 당시 기생들은 요즘의 연예인처럼 높은 인기를 누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춘면곡>
앳된 서생이 도포를 멋지게 차려 입고 부모 몰래 술집 앞에서 미인을 그리워한다는 노랫말은 스타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담은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노래 <팬> 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한문학자인 저자는 이처럼 옛 문헌에 나타난 우리 음악 이야기를 통해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바라본다. 특히 요즘의 풍경, 혹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설명함으로써 생생함을 더했다. 팬>
판소리 <춘향전> 중 <춘당대사과> 대목은 이 책에서 ‘옛날의 논술 특별 전형 현장’으로 소개된다. 이 도령이 시험장에 들어가서 고사장 본부석 앞에 자리를 잡은 뒤 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 후 유가에 나서는 모습까지가 세세하게 나오는데, 과거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시험장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해주는 자료는 <춘당대사과> 대목이 유일하다. 춘당대사과> 춘당대사과> 춘향전>
경기 잡가 <출인가> 는 ‘ <춘향가> 의 인기 대목을 슬쩍 벤치마킹해 만든 짝퉁’으로, 판소리 <수궁가> 중 <약성가> 는 ‘돌팔이 도사의 엉터리 약타령’으로 설명된다. 이 밖에 <수룡음> <황하청> <봉황곡> <도산십이곡> <농부가> 등 옛 음악의 내용과 배경, 그에 얽힌 역사 등을 무겁지 않게 건드려간다. 농부가> 도산십이곡> 봉황곡> 황하청> 수룡음> 약성가> 수궁가> 춘향가> 출인가>
음악과 함께 살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예(禮)와 더불어 악(樂)을 중요시했던 조선 시대에도 음악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루머가 심했다.
용모가 뛰어났던 18세기 가야금 연주자 민득량은 경박하다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정상적인 결혼을 하지 못했다. 여성 음역을 소화하는 남자 성악가 카운트테너처럼 여자 목소리를 잘 냈다는 남자 소리꾼 남학의 이야기는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 를 연상시킨다. 가면>
이 책은 국악방송 프로그램 <솔바람 물소리> 에 소개했던 내용들을 묶은 것으로, 책 제목은 이규보 <적의(適意)> 의 첫 부분이다. 적의(適意)> 솔바람>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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