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제스 나임 지음ㆍ이진 옮김 / 청림출판 발행ㆍ376쪽ㆍ1만3,000원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와 로버트 클링마이어가 2004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세계 지하경제의 규모는 전체 경제규모의 32.6%에 달한다. 이보다는 다소 작지만 지하경제의 영향력은 우리나라도 막강하다. 재래시장만 찾아도 소위 짝퉁 제품이 별천지처럼 깔려있고, 개봉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하면서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불법장기이식이나 위조명품에 관한 르포 등 뿌리깊은 검은 경제의 해악을 다룬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긴 하지만 선정적이거나 단면적인 폭로 일색이었다. 국제관계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 편집장인 모이제스 나임의 <불량경제학> 은 이런 검은 거래의 실상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 불량경제학> 포린>
책은 세계 검은 경제의 범주를 모조 상품, 마약, 무기, 매매춘을 포함한 인신매매와 장기매매, 위조, 돈세탁 등으로 나눠 설명한다. 검은 거래의 범위가 얼마나 넓고, 얼마나 부도덕하고, 얼마나 위태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백과사전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검은 거래의 규모는 1990년대 들어 급격히 팽창했다. 각국이 해외투자의 제한을 없애고 수입장벽을 철폐했으며 인터넷의 발달로 암거래상이 단속의 손길을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자유화ㆍ세계화ㆍ정보화의 바람을 타고 검은 거래는 시나브로 21세기판 '보이지 않는 손'이 됐다는 것이다. 폐해는 심각하다.
베트남, 우크라이나에서 유통되는 아도비사의 소프트웨어 가운데 90%는 해적판으로 추정되고, 불법으로 다운로드되는 영화는 하루 50만편에 달한다. 지적 도둑질에 그치면 다행이다. 1995년 니제르에서는 가짜 뇌막염 백신이 유통돼 수 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중국에서는 일부 동물용 약품이 인간용으로 재포장되는 등 검은 거래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킨다는 점은 비극이다. 세계 최빈국인 알바니아의 부모들은 신생아가 태어나기도 전에 5,000유로에 아기를 암거래상에 넘기고 이 아기들은 서유럽을 떠도는 전문 걸인으로 자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매춘을 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는 여자들이 가족의 열정적인 격려를 받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들이 벌어온 돈으로 포장도로를 깔고 상수도를 설치한다.
폭로 내용도 꼼꼼하지만 이를 예방하기위한 저자의 현실적 통찰에 더욱 공감이 간다. 그는 검은 거래는 낮은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높은 수익성 때문에 이뤄진다며 도덕적, 윤리적 해결책보다는 수익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가령 성 서비스의 판매는 합법화했지만 성 구매를 불법화함으로써 매춘의 위법성을 직업여성에서 고객에게 이전시킨 스웨덴의 매매춘 예방책은 좋은 사례다. 포주들의 예상 수익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400년간 1,200만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신세계로 팔려간 데 비해, 지난 10년간 동남아에서만 3,000만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밀거래됐다는 대목에선 인류가 과연 진보하는가 하는 회의가 밀려온다. 저자는 이 불량 경제의 해악을 근절시킬 수는 없겠지만 개인, 시민단체, 국가가 협력하면 폐해를 줄일 수 있다며 모두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책의 원제는 'Illicit'.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역자는 경제적인 유인(誘引)을 제거하는 것만이 검은 경제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해 <불량경제학> 으로 옮겼다고 한다. 불량경제학>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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