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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친년-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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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친년-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입력
2007.03.3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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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아 떠난 9명의 '미친년들'이명희 지음 / 열림원 발행ㆍ304쪽ㆍ1만1,000원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아니 도발적이다. '미친년'이라니….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친년'은 정신이상의 여자나 언행이 실없는 여자를 상스럽게 가리키는 단어다.

그 '미친년'은 가끔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따지려 드는 '피곤한 여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여자가 피곤한 여자일까. 저자에 따르면 어떤 여자가 피곤한가 그렇지 않는가를 가르는 기준은 사회의 관습이다. 그러니 남이 정한 특히 남성 중심의 기준 따위를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기준에 구애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여성이 들을 수 있는 '미친년'이란 말은 더 이상 욕이 아니다. 올곧게 자신의 길을 열심히 걸어온 여성에게 부여하는 '훈장'이 될 수 있다.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에서 에코페미니즘을 공부한 저자는 자신이 직접 만난 9명의 '미친년들'에 대한 인터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유학시절 스승이었던 현경 유니언신학대학 교수를 통해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은 사진작가, 교수, 연극 연출가, 기업 CEO, 사제 등 다양하다.

저자로 하여금 <미친년…> 을 구상하게 만든 사진작가 박영숙은 정신병원을 방문한 이후 7년 여에 걸쳐 제작한 '미친년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는 사진을 통해 여성을 미치게 만든 구조와 억눌린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 한국 여성문화운동의 1세대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을 '미친년'으로 몰아가는 사회구조를 고발하고 여성의 내밀한 욕망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CEO 김태연은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책임은 그러한 제도에 순종하며 침묵한 여성에게도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여성에게 "남편과 자식이 어떻다며 팔자 타령할 시간이 있으면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몰두하라"고 충고한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와 <굿 바디> 의 연출가인 이브 엔슬러는 여성의 몸에 대한 금기를 공공의 차원으로 끄집어 낸 세계적인 페미니스트다.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철학 없이 남성의 미적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보형 속옷을 입거나 성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정신과 신체의 건강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한다.

<미친년…> 을 읽으면 제목이 주는 강렬한 도발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솔직한 고백과 충고를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의 대결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미친년…> 은 페미니즘 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남녀 모두 공감하는 인생의 행복 지침서에 가깝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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