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두고 배우의 예술이라 한다. 무대 위의 배우가 온전히 연기를 통해 관객을 극에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 는 이런 정의를 무색케 만든다. 2개월이 넘도록 만원사례인 이 작품은 공연이 계속될수록 배우 조재현을 보러 온 관객보다 극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극장을 찾은 관객이 더 많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학로의 사다리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도 연출가 박근형의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고, 5월에 강남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를 연극 <필로우맨> 까지 논한다면 ‘박근형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로우맨> 위대한> 경숙이,>
“연극에서 배우의 연기가 가장 중요하죠. 지난해 동아연극상에서 고수희와 주인영이 연기상을 받았잖아요. 아버지 역의 김영필도 받아야 할 텐데….”
이번 주말에 <경숙이…> 의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소감을 묻자, 박근형(44)은 초연 때부터 함께 한 배우에게 공을 돌린다. “대단한 작품도 아닌데 내 이름만 보고 오는 관객이 얼마나 되냐”며 세간의 평가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경숙이…>
그의 겸손한 본새를 보니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청춘예찬> <선착장에서> <경숙이…> 등 그의 작품이 절로 떠오른다. 항상 남루하고 찌질한 인생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의 입가엔 웃음이, 눈가엔 눈물이 번지고 만다. 소소한 일상의 리얼리티를 통해 그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변두리 인생을 연극이란 ‘예술’로 담아낼 줄 안다. 경숙이…> 선착장에서> 청춘예찬>
“맞아요, 찌질한 거. 감추고 싶지만 우리의 과거와 현실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모습이죠. 제가 자라면서 보고 들은 게 그것 뿐이니까요.”
구어체의 대사는 박근형 작품의 또 다른 특징. 문학적인 대사를 쓰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란다. 현재 준비 중인 <필로우맨> 의 대사도 번역이 가져올 수 있는 문어적인 대사를 일상 대화로 바꾸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배우 최민식도 박근형 작품의 매력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꼽을 정도다. 필로우맨>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죠. <필로우맨> 은 원작이 한국 작품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들고 싶어요.” 소극장 공연을 통해 관객과 밀착한 연극을 보여주던 그가 강남의 대형 극장에서 최민식이란 스타를 기용한 <필로우맨> 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로우맨> 필로우맨>
“상업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에요. 마크 맥도너 작품의 기발함과 반전이 마음에 들었고, 좋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행운이 따른 거죠.”
스타 마케팅이 아니라 창작 행위의 일부일 뿐이라는 대답은 뮤지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중년 부부들이 계를 조직해서 시끌벅적하게 노는 이야기를 가지고 창작 뮤지컬을 꼭 쓰고 싶어요. 한 마디로 엉터리 뮤지컬이죠.” (웃음)
진짜 엉터리는 자신의 공연이 엉터리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법. 그의 모습이 예술 창작의 길을 느긋하게 거니는 고수 같다.
어렵다고 하는 연극계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관객이 코미디만 찾는다고 탓할 수는 없어요. 제작 현장에 있는 저희들의 잘못이죠. 하지만 실패의 노하우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 성공할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박근형이 생각하는 연극은 무엇일까. “연극이 그냥 즐기고 마는 문화상품으로 전락해 버렸어요. 예전처럼 사회 변혁의 단초가 되는 작품이 안 보여요. 그 점에서는 제 작품은 여전히 부끄러울 뿐입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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