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민주주의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부탁 받았다. 주최측으로서야 그야말로 섹시한 제목을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강연자로서는 그만큼 부담스러운 제목이었다.
더욱이, 적을 만들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지혜로 여겨지는 만큼, 무엇인가 또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식의 사유를 전개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어진 제목에 충실하여 생각을 진행하니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는 '무엇이 민주주의적인가'를 답함으로써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장난 같지만 말이다.
● 민주주의 적은 누구인가
최초의 본격적인 정치사상을 전개한 이는 플라톤이다. <국가> 에서 정의로운 국가체제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플라톤은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리는, 소위 철인왕 정치를 주장한다. 철인왕 정치란 진리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철학자를 장시간 정치에 적합한 훈련을 시킨 다음 국정을 담당케 하는 것이다. 국가>
그런데 이 사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 철인왕의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역량 있는 통치자 한 사람만 있으면 우리의 정치는 바르게 될 것이라는 생각, 즉 철인왕 콤플렉스를 갖게 한다는 말이다.
이런 콤플렉스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데올로기를 현실에 무리하게 적용하여 공포정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것이요, 자신이 경험한 민주주의가 절대적 가치라 믿고 이를 타국에 무력을 통해서라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도 이것이다.
대통령만 잘 뽑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도 이것이고, 정치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철인왕 콤플렉스에 빠져 왕 노릇 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런데 나는 왕이 아니니까 모든 문제에서 내가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은 없다고 믿는 것도 철인왕 콤플렉스의 이면이다. 이는 피지배자인 신민의 근성이지 주인인 시민의 의식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짧은 시간에 이룩한 경제성장 못지않게 민주주의 제도의 확립 또한 참으로 자랑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제도가 민주적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정말로 민주적으로 되지는 않았다. 사실상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뿌리 깊은 비민주이다.
● 주인의식 있는 시민의 부재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정치적 환경, 예컨대 학부모회의나 학교-학부모 간의 회의, 종교단체나 동호회와 같은 모임의 회의, 아파트 부녀회나 또는 이러저러한 작은 정책결정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지 돌아보자.
앞장서는 사람은 비민주적이고 부도덕한 관행에 타성적으로 끌려가고, 나머지 대부분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한국사회의 정치적 후진성. 이것은 우리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탁월한 정치지도자의 부재의 문제만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주인으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으로 충만한 시민의 부재에 있고, 따라서 그것은 나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의 적은 바로 나인 셈이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