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새 삶을 안겨준 그녀가 시한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꼭 면사포를 씌워주고 싶습니다.”
신용희(65ㆍ대전 대덕구 법동)씨는 23년 반의 세월을 차가운 교도소 안에서 보냈다. 스무 살 때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을 시작으로 모두 5차례나 교도소에 수감되는 등 험하고 어두운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1995년 쉰이 넘은 나이로 청송감호소를 나온 뒤로 신씨는 더 이상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 사회와 사람을 증오했던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북 김천에서 만난 전옥래(59)씨가 그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없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선하게 살아요.”
마음 착한 아내와 함께 살면서 그는 천천히 변해갔다. 12년 동안 단 한차례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쥐꼬리만한 임금의 막일도 고마워할 정도로 성실한 가장이 됐다. 아내도 식당일과 과일행상을 하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를 행복하게 꾸며 나가던 신씨 부부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2005년 대전으로 이사한 뒤 아내는 종종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병원에서 유방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한때 병세가 좋아지는 듯 보였으나 올해 1월 암이 재발했고 급기야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다.
그는 아내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면사포였다. “손바닥만한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형편이어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살았지만 이대로 보내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지난달 16일 구청에 가서 뒤늦은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물의 편지를 썼다.
다행히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갱생보호공단 대전지부는 지역후원회의 협조를 얻어 신씨 부부의 결혼식을 준비해주었다. 신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31일 대전 대덕구의 한 예식장에서 아내의 소원인 하얀 면사포를 씌워 주게 됐다.
대전=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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