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디 어디 선정 세계 대학 순위라는 게 언론에 보도된다. 예를 들어 요전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발표한 '세계 100대 글로벌 대학'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도 하고,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도 한다.
그 때마다 베이징대도 순위에 들었는데 한국 대학은 하나도 못 들었네, 200위권 밖으로 밀렸네 하는 개탄이 나온다. 유달리 등수에 집착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대학 순위를 새삼 거론하는 이유는 최근 서울대를 시작으로 각계에서 "정부의 3불(不) 정책이 대학 경쟁력 확보에 암초다"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을 뽑을 때 본고사도 보이지 못하고, 지망생의 출신 고교를 등급화해서 차별대우하지도 하지 못하고, 기여입학제도 못하는 바람에 대학의 경쟁력이 가차없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대학 자율을 저해하는 규제 조치이니 누가 봐도 바람직할 것은 아니다.
● 경쟁력 약한 게 삼불 탓?
그런데, 대학의 경쟁력이란 게 무엇일까? 그게 뭐길래 3불 정책이 그토록 방해가 될까?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기관들의 기준을 보는 것이 좋겠다. 요약하면 해당 학교 교수나 연구원의 논문이 권위 있는 전문지에 인용된 횟수, 외국인 교수ㆍ학생의 비율, 교수 1인당 논문인용지수, 교수 1인당 학생 비율, 도서관 장서 규모 같은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어디에도 신입생의 우수성이라는 항목은 없다.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정도의 우수성은 기본이므로 특별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낫다는 서울대조차 이런 순위에 별로 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심하게 말해서 신입생이 우수하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국가가 3불이라는 이름으로 우수한 신입생을 뽑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버드대 총장이나 옥스퍼드대 총장에게 해 주면 뭐라고 할까? 아마 What are you talking about?(무슨 소리요?)이라고 할 것이다.
연구비를 키우고, 우수 교수를 어떻게든 영입하고, 무능 교수와 불량 학생은 쫓아내고, 특화할 분야에 집중하고, 석ㆍ박사 과정 학생의 연구를 독려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극대화하고, 특허를 많이 내고 하는 노력에 전력투구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이제 갓 들어와서 4년 동안 키워야 겨우 써먹을까 말까 한 애기들한테 대학의 경쟁력 책임을 몽땅 갖다 씌우는 것이다.
비유가 약간 부적절하지만 솜씨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격이다. 도편수나 소목장쯤 되면 연장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법이다. 하버드대생을 만드는 것은 하버드대인데 우리는 서울대생이 서울대를 만든다.
하기야 미국의 경쟁력 높은 대학들도 우수학생을 뽑는 일을 중시해서 많은 인력과 노력을 투입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 미국 대학에서 입학 전형 일을 했던 재미동포 안젤라 엄씨의 분석에 따르면 대개 하버드대에 응시한 고교 수석 졸업생의 80%가 낙방한다.
우리나라의 수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SAT 만점자가 아이비 리그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숱하다. 본고사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왜 그럴까? 평범한 우수생이 아니라 특출한 학생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 하버드와 다른 점 알아야
100점 만점 시험에서 100점과 90 몇 점은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 학생의 특출한 자질, 열정, 헌신, 성실성, 인간적 성숙도 같은 덕목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대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하버드대처럼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교육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제 못난 것이 3불 때문이라니….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