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다. 우리말에 영어의 ‘The’ 같은 관사가 없으니, 느낌표라도 하나 붙여야 한다. 한국 영화판에서, 송강호라는 브랜드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4월5일 개봉하는 <우아한 세계> (감독 한재림)는 그런 브랜드파워로 충만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송강호가 아니면 누가 저런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 아니 감탄이 계속된다. 송강호의,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영화다. 스크린 구석구석을 자신만의 체취로 꽉 채울 수 있는 대형 배우가 있다는 것, 좋지 아니한가. 우아한>
“글쎄요. 제 비중이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지나요” 거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는 지적에 송강호는 약간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스스로도 영화 속 자신의 무게를 부정하지 않았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40대 가장, 가족과 오순도순 사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같이 아수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 강인구라는 캐릭터 속에 우리시대 40대 가장의 모순적 비극을 모두 담아야 했어요.”
‘생활느와르’라는 낯선 카피를 달고 있지만, <우아한 세계> 는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만년 과장 샐러리맨 이미지의 조폭 강인구. 물이 제대로 안 나오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지만, 하나뿐인 아들은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보냈다. 그가 제일 사랑하는 딸은 말상대도 해주지 않고 ‘직장’인 조직생활도 결코 녹록하지 않다. 우아한>
이래저래 인생이 꼬이는 찰나, 지지리도 칠칠치 못한 부하들이 또 사고를 친다. “아름답다, 아름다워.” 부하들에게 내뱉는 강인구의 이 반어적 애드립 속에, 삶에 지친 40대 가장의 비애가 진하게 묻어난다.
영화는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농익은 송강호의 연기로 시종 관객을 잡아 당긴다. 그는 천변만화 하는 표정과 감정 속에서, 단 한번도 영화의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짙은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눈매부터 껄렁껄렁 코믹한 건달의 손짓까지, 송강호라는 그릇 속에 오롯이 담겨 나온다. ‘전성기’라는 진부하고 불확실한 표현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그러나, 꽉 찬 그릇은 위태롭게 보이기 마련. <우아한 세계> 가 아직 개봉도 안 됐지만, 송강호는 다음 영화 스케줄이 3개나 잡혀 있다. ‘무쇠팔’ 최동원 덕에 롯데가 우승한 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금세 의도를 알아차렸다. “최동원 선수는 참 아깝죠. 우아한>
잘 한다고 죽어라고 혼자 던지게 만들어 선수생명이 끝났잖아요. 하지만 배우는 야구선수와 다르다고 봐요. 영화를 거듭할수록, 지치기보다는 새로운 자극과 갈증을 느끼죠. 아직 내가 ‘고갈돼 간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올해로 만40세, 불혹(不惑)을 맞은 배우 송강호에게 영화는, 또 연기는 어떤 것일까. “처음 연기를 할 때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고만 애를 썼어요. 하지만 이제 관객을 먼저 생각하게 돼요.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얼굴, 사회적 절제 요구 때문에 내면 속에만 감춰둔 자신의 얼굴을 보고싶어 한다고 봐요.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 속에서 그걸 찾는 게 아닐까요.”
인터뷰 내내 지나치게 ‘진지남’의 모습만 보인 이 배우에게, 영화 후반부 부하를 걷어차는 시퀀스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도저히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리얼한 로우킥에 대해. “사실은 촬영도 막바지고…무지하게 찍기 싫더라고. 그래서 그냥…. 우헤헤헷.” 비극이면서 동시에 코미디 같은 이 배우, 그의 연기를 오래도록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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